칼럼
『코리안 하이웨이』 2. 수확의 날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2. 수확의 날
누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계속 두드리길래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 꿈에서 나와 보니 꿈밖에서도 누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네, 나가요.”
지리산이 몸을 일으켜 눈곱을 떼며 쾅쾅거리는 문에 가까워지는 아침으로부터 이틀 전의 일이었다.
남산과 구리와 오소와 부엉은 오대산의 집에 모여 있었다.
내일이면 오대산이 바다 건너로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모여서 대마를 피우며 환송의 밤을 보내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편 오대산은 사는 곳도 좋고 짝꿍 벌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배웅해주는 마음도 고마웠지만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해외 레지던스 지원 사업 대상 발표 날부터 달력에 칸칸이 X를 그어가며 하루하루를 해치워왔기 때문이었다.
가보고 싶은 커피숍도 많았고, 맛보고 싶은 종자나 호사스러운 대마, 예를 들어 커다란 조인트에 익스트랙트를 바르고 키프를 뿌린 것처럼 한국에선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을 피워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적대적이거나 불안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영상과 음악을 만들며 대마초와 함께하는 일상을 누려보고 싶었다.
오대산의 속내가 어떠했든 간에 퇴근을 했다든지, 막 일어났다든지, 피자를 시켰는데 큰 것이 왔다든지 어느 구실이든 일단 모여서 대마 연기로 기념하는 친구들에게 오대산의 출국은 물론 누락되어서는 안 될 기념의 이유였다.
그들은 간혹 짖는 먼 개와 먼 새와 실내의 자욱한 연기 가운데 앉아 어떤 이유에선지 농구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념이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코비라는 이름은 한자(鼻)로 따져보아도 말이 되는 만큼 코비가 농구를 잘 하는 건 설득력이 지당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농담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원이라는 형태를 상상해내는 인간 정신의 소름끼치는 구석에 관해서, 신이 원을 빚으면 해와 달처럼 별이 되지만 인간이 바퀴나 그릇을 지나쳐 원을 진지하게 만들 때 그것은 놀이를 위한 공이 되어준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대산이 본격적으로 농구 이야기를 꺼내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피구든 축구든 어느 공놀이보다 음악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니까 여자애들은 보통 관심도 갖지 않는데 남자애들 코트에 껴서 농구를 해왔다는 개인사를 그날 역시 꺼내며 농구를 향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차마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너 농구 못하잖아.”
머금고 있던 연기를 자욱한 너구리굴에 섞으며 유치하게 오대산을 도발한 것은 구리였다.
어이가 없다는 듯 오대산은 절레절레 웃음을 흘렸다.
“아니야. 나 농구 잘 해.”
오대산은 앉은 채로 갑자기 코트 위의 선수가 되어 상대 팀 선수가 동료에게 패스하는 공을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듯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낚아채더니 상대 팀 선수가 된 구리에게 검지를 세워 어림도 없다는 듯 살랑여주고 골대를 향해 페이드어웨이 슛팅을 날렸다.
다만 그물이 철썩이는 소리를 대신하여 취할 대로 취한 오대산이 뒤로 넘어가는 몸을 멈춰 세우지 못하면서 미닫이문과 후두부가 충돌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그 충격으로 자리를 이탈한 문짝이 바닥에 쓰러지며 유리를 산산이 깨뜨려 와르르 바닥에 쏟아내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괜찮냐고, 다친 사람은 없냐고 확인을 마친 친구들은 찬물을 끼얹은 불씨처럼 잠잠해졌다.
“괜찮아. 깊게 생각하지 마. 별 일 아니야. 별 일이면 액땜인 거야. 너한테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일을 대신 받아내느라 부서진 거겠지.”
벌은 흘러내리는 눈꺼풀과 발음을 바로 세우려는 듯 안경의 코받침을 끌어올리며 짝꿍의 어깨를 감쌌지만 오대산은 얼음처럼 희게 질려있었다.
깨진 유리처럼 식은 친구들은 함부로 뻣뻣한 공기에 농담을 섞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말없이 서로를 도와가며 조각을 쓸고 신문지로 감싸고 문을 끼웠다.
휑한 문과 그 사이로 드나드는 한기만큼 스산한 침묵 말고는 그들이 모였던 저녁의 모습과 다를 것도 없었지만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집이나 잘 곳을 향해 침침한 새벽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리산이 쾅쾅 요란한 대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지리산의 이름이 지리산이 맞냐고 물어보는 마을 파출소 순경이 있었다.
“신고 받고 왔어요. 마당에서 대마가 자란다던데. 저거예요? 저게 대마예요?”
순경은 우람하고 무성한 ‘지리산’을 가리켰다.
“아뇨. 이거 그냥 허브예요. 몸에 좋은 거예요. 어느 정신 나간 인간이 이렇게 다 보이게 보란 듯이 대마를 키우겠어요.”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내며 지리산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으로는 알아내기 어렵다고 느끼면서 그저 자신의 입을 통해 되는 대로 흘러나오는 말을 잠자코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건 그렇지. 근데 난 봐도 잘 모르니까는. 잠깐 나오지 말고 거기 있어 보세요.”
순경은 대문을 느슨하게 닫고 그 틈에 한 손을 걸쳐둔 채 오고 계시냐고, 지키고 있다고, 아마도 대마를 대마로 알아볼 눈이 있는 경찰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지리산은 일단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이러다가는 곧 멈출 것처럼 쿵쾅거리는 심장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펄떡거리게 뒤흔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리산은 실내를 쿵쾅쿵쾅 오가다가 남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 지리. 콜록콜록! 잠깐만. 콜록콜록, 콜록콜록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이며 이어지는 기침이 사그라들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동안 지리산은 수화기로 연기라도 빠져나올까 봐 한 손으로 수화기를 덮고 창문으로 대문 쪽을 살폈다.
수화기를 귀에 붙인 순경이 집 쪽을 보고 있어 커튼을 쳤다.
그동안 기침 사이사이로 케니 지의 초콜릿처럼 녹아내리는 색소폰 연주가 카오디오를 지나 수화기로 흘러나왔다.
“나 지금 출발해서 가고 있어. 고속도로야.” 남산은 조인트를 한 모금 빨았다.
“오지 마. 경찰 왔어.” 지리산은 속삭였고 남산은 기침했다.
“경찰이 왔다고? 콜록, 왜? 일단 갈게. 너 줄 선물도 있어.”
뒷좌석에는 혹여나 넘어져서 깨지기라도 할까 봐 완충 포장지를 겹겹이 두르고 안전벨트까지 매었지만 그 용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생김새의 크고 근사한 초록색 유리 워터봉이 있었다.
지난 한한연 모임 때 부서진 조롱박 봉이 마음에 걸려 준비한 선물이었다.
조수석에는 초록색 리본으로 매듭지어 장식한 전지가위가 누워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지리산’을 수확하는 날이었다.
“미친놈아. 오지 말라니까. 경찰 왔다고. 일단 끊어.” 남산은 다 피운 조인트 팁을 커피 캔 재떨이에 빠뜨렸다.
그리곤 마비된 정신으로 도로를 미끄러지는 동안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악몽의 검은 강물 바닥을 향해 잠겨갔다.
지리산은 다급하지만 공연히 실내를 오가다가 튕겨나가듯이 부엌으로 갔다.
천장 건조대에 가지째 매달아 말리던 꽃송이들을 빈 포대 자루에 쑤셔 넣어 장롱 위에 던져놓았다.
<천하제일 삼꽃 대회>를 위해 미리 따고 남은 것들이었다. 그리곤 냉장고를 열어 뭐가 있는지 보았다.
쿠키나 브라우니 같은 에더블이 있을지도 몰랐다. 지리산에겐 검색어 “대마초”에 해당되는 뉴스를 찾아 읽는 취미가 있었는데 개중엔 대마로 김치볶음밥이나 전을 부쳐 먹었다고 피우는 것도 모자라 요리를 하여 ‘변종 대마’를 섭취하다니 죄질이 불량하다며 가중 처벌이 적용된 판례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냥 먹어도 몸에 좋은 인삼을 쪄먹고 고로 지어 먹고 닭에 찔러 넣어 각종 한약재와 끓여 먹는 등 ‘변종 삼’을 섭취했으니 악독하다는 식이어서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막상 그런 것이 자신의 냉장고에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했다.
“피고인은 대마를 연기로도 모자라 음식으로 요리하여 경구 섭취하는 등 연기의 유해함을 피하고 마땅히 올바른 음식만을 위하여 쓰여야 할 소화기관으로 감히 대마를 섭취하였으므로 그 죄질이 좋지 않습니다.”
지리산은 상상 속의 검사를 밀어내고 지금 이렇게 허튼 생각 할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냉장고 확인을 마치고 냉동고를 열었다.
거기엔 ‘오대산’ 견찰지가 붙은 락앤락 반찬통이 있었다.
생각날 때마다 아껴 먹으려고 오대산으로부터 받아 얼려둔 천하제일 삼꽃 대회 우승 꽃송이였다.
지리산은 뚜껑을 열어 싱싱하게 얼은 꽃송이를 쥐고 창문을 열어 직구를 던지는 투수처럼 팔을 휘둘렀다.
주먹을 펴자 짓눌린 기색도 없는 꽃송이들이 고스란히 피어있었다.
그것을 양손으로 따스하게 감싸며 지리산은 자신이 이것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리산은 방으로 가 책장에서 책등에 ‘Holy Bible’이라 쓰인 책을 뽑았다.
그것은 성경처럼 보이고 싶은 턱도 없는 희망 아래 ‘Holy Bible’이 뻔뻔스럽게 프린트 된 플라스틱 상자였다.
지리산은 책장을 펼쳐 세 자리 비밀번호 다이얼을 맞췄다.
4. 2. 0. 그라인더와 유리 파이프와 조인트 페이퍼와 라이터와 성냥이 들어있었다.
언제 경찰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공포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은 떨리는 손으로 차마 버릴 수 없는 ‘오대산’ 꽃송이를 그라인더에 찔러 넣어 갈아가며 순식간에 길고 뚱뚱한 조인트를 네 대나 말았다.
이런 급박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군침 도는 팽팽하고 꽉 찬 조인트를 흠잡을 데 없이 말아내는 자신이 뿌듯하고 대견하게 느껴졌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경찰이 들이닥칠 때까지 하나 느긋하게 피워버릴까 생각도 들었다.
이 괴로움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리산은 고개를 저어 상상 속의 연기를 흩어내고 상자를 닫아 다이얼을 돌려 잠그고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마당이 소란스러웠다.
“대마 맞네. 뽑아.” 지리산은 현관문을 열고 형사로 보이는 아저씨가 양손으로 ‘지리산’을 뽑아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치는 모습을 보았다.
“…씨죠? 대마 관리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거예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고지를 하는 중인지, 아니면 그냥 괜히 뭐라뭐라 하는 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가 물속처럼 왕왕 울려대는 동안 지리산은 나뒹굴며 벌써 흙이 많이 묻은 ‘지리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흙 밑은 저런 모습이었구나. 감자밭에서 무자비하게 뽑혀 방치되는 명아주처럼 드러난 ‘지리산’의 뿌리를 보면서 지리산은 지난봄이 떠올랐다. 씨앗을 심고 올라왔나, 올라오나 살피던 며칠 동안의 흙바닥으로부터
어느새 텄던 싹의 앙증맞은 인사.
안녕. 아침마다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배우던
어쨌든 연한 살을 밖으로 무럭무럭 밀어내며 번지는 초록 생명력.
이 몸이 먹고 마신 모든 것들.
밥. 밥을 기른 비와 빛. 비와 빛이 필요한
모든 것들로 지은 퇴비를
네가 뿌리내린 흙에 섞을 때
너라는 작은 숲속의 벌과 나비를 보았지.
궂은 날에는 그늘 속의 지렁이와 달팽이도 보았고
밤이 오면 잘 자. 같이 밤하늘을 보았지. 그동안
달이 몇 번 차고 비었고
피우지도 않았는데 진정한 웃음을 가르쳐주던 친구가 허망하게 뽑혀있었다.
일부러 요란하고 싶은 모양인지, 일단 부닥쳐본다는 정신을 숨기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경찰들이 부딪칠 수 있는 거면 부딪쳐가며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어질렀다.
젓가락, 숟가락, 병따개 따위가 들어있는 서랍을 꺼내어 젓가락, 숟가락, 병따개 따위를 바닥에 엎질렀다.
다시 그 위로 그릇이나 양념 통, 책 따위가 나뒹굴었고 그들은 윽박질렀다.
“대마 어딨어요. 피웠죠? 어디 숨겼는지 말하세요. 지금 도와주는 거야. 숨기다 나오면 가중처벌이니까 도와줄 때 말씀하세요.”
안 피웠다고, 대마 그런 거 잘 모른다고, 그런 거 없다고 한사코 둘러대는 지리산의 눈에는 장롱 위의 포대가 지나치게 선명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책장에 꽂힌 소설이든 에세이든 가리지 않고 뽑아 던지면서도 무언가 무서운 게 나올지도 모를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지 침대 밑을 들추어 성경이라 주장하는 플라스틱 상자는 찾아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들은 마치 신의 가호를 받는 특정한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를 쓸어버리는 태풍 같았다.
그렇게 대마를 어디에 숨겼는지 다섯 번 정도 더 물어보는 동안 집 구석구석을 꼼꼼히 난장판으로 뒤집고 나서 그들은 “서로 가자”고 말했다.
지리산은 형사가 문을 열어주는 스타렉스에 탔다.
담배에 전 냄새가 시트며 창문이며 공기며 할 것 없이 깊게 배어있었다.
그들은 ‘지리산’을 트렁크에 실으려고 하다가 온갖 잡동사니 때문에 자리가 나지 않는지, 아니면 귀중한 증거니까 훼손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조수석에 태웠다.
고개를 내민 ‘지리산’이 ‘너무 겁먹지 마.’ 윙크하는 것만 같았다.
수확을 목전에 둔 꽃을 버글버글 피운 대마답게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며 담배랄지, 가죽이랄지, 아저씨랄지 싶은 쿰쿰한 냄새를 휘감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형사가 나무위키에서 대마초를 검색하여 사진을 보고 고개를 돌려 ‘지리산’을 보고 갸웃거리면서 투박한 엄지로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카더라식 설명을 대충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지리산은 뱃속이 끓는 기름처럼 불쾌하게 끓어서 뭐가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때 차가 방지턱에서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 않아 위 아래로 요동쳤고 그 바람에 ‘지리산’의 꽃향기가 진하게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으아. 이거 냄새로는 안 취하는 거 맞지?” 운전석의 형사가 조금은 걱정 섞인 기색으로 던진 우스갯소리에 “이러다 뿅 가는 거 아니냐.”, “간다, 간다, 쑝 간다.”, “안 돼요. 전방에 공룡 지나가니까 가면 안 됩니다.” 따위의 끼리끼리 맞장구 장단을 맞추며 형사들이 낄낄거리는 동안 지리산은 주머니의 폰을 슬쩍 꺼내어 곁눈질로 웃어대느라 여념이 없는 형사들의 동태를 살피며 메신저 앱을 삭제했다.
소리 죽여 안도의 기색이 섞인 한숨을 조금씩 코로 흘려보내는데 꼭 조수석의 ‘지리산’이 고개를 내밀어 윙크하는 것만 같았다.
‘이게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야.’
집을 수색할 때 “폰이 두 대네? 제출 동의선데 사인하시고 서에 가서 제출해요. 그때까지 괜히 꺼내보지 마시고. 괜히 더 곤란해져. 아시겠어요?” 라면서 법적 절차 때문인지 폰을 현장에서 압수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리산은 몰래 폰을 주머니에 감추면서 더 심각한 문제를 알아차렸다.
두 대의 폰 중 지금 것은 2주 전의 <천하제일 삼꽃 대회> 당일, 지리산의 폰은 너무 낡아 메시지를 나누거나 통화하기에 불편하다며 자기는 어차피 곧 바꾸려던 참이니까 쓰라고 비둘이 준 것이었다.
그러니 이 폰에는 기껏해야 2주 동안의 생활이 사진이나 파일로 남아 있을 뿐이었고 관건은 다른 쪽 주머니의 폰이었다.
지리산은 아직도 향기만으로 대마에 잔뜩 취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헛소리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형사들의 모습을 숨을 죽이고 살펴가며 두 번째 폰에서도 메신저 앱을 삭제했지만 과연 도움이나 될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내용의 문서, 어떤 순간의 사진이나 비디오가 얼마나 들어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하게 들어 있을 만한 것을 꼽자면 예컨대 ‘지리산’의 성장 사진 일기가 있었다.
대마초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아름다운 사물과 마주한 인간이 보통 그러듯이 대마의 사진을 찍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한약 연구회 톡방에는 온갖 대마 사진과 애정 어린 글귀, 도움이 되는 재배 지식이나 재배 상담 따위가 가득했다.
-보시다시피 꽃이 잘 성숙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응애 녀석들이 줄을 치네요. 어쩌죠?
-보이는 족족 검지와 엄지로 눌러줍시다. 이 또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실용적인 고민 해결 말고도 즐거움을 위한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사진이나 영상도 심심찮게 올라왔는데 가령 지리산은 ‘지리산’에게 장구를 치며 성장을 기원하는 노래를 불러주었고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그런 것은 다운 받지 않기가 어려웠을 텐데 오대산, 벌, 범, 남산, 구리, 오소, 부엉, 은행, 비둘 등 다른 친구들도 대마 곁에서 명상, 대마에게 시 낭독, 대마와 영화 보기 등 온갖 비디오를 찍어 올렸다. 물론 전부라고 해도 좋을 비디오의 공기 질은 꿈결처럼 무척이나 뿌옇고 취기로 가득했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겠지만 지리산의 폰에는 그런 데이터가 터질 듯이 들어있었고 심지어 경찰이 가져오지 않은 데스크톱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빙산의 일각 수준이었다.
만일 경찰이 그 모든 것을 보게 된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때 스타렉스는 경찰서 주차장에 들어섰고 지리산의 얼굴은 녹색으로 질려있었다.
자신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지리산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어디까지 번져나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과 풀을 초토화시킬지 알 수 없었다.
형사 1과니 2과니 마약이니 비슷한 표지판과 비슷한 문들이 늘어선 침침한 복도를 걷는 동안 지리산은 고약한 얼굴의 검사와 희끗희끗한 판사가 기다리는 법정에 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뚜벅뚜벅 날선 구두소리를 울리며 중앙으로 걸어 나온 검사는 안경 테 너머의 고압적인 말벌 같은 눈으로 지리산을 째려보고 다음과 같이 상투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여기 있는 제가 검사로서 구태여 길게 말하거나 두 번 말해 강조하거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수사적 현란함으로 피고의 죄를 입증하고 그 죄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묘사함으로써 여기 계신 분들께 이 사건의 중대함을 알리기 위하여 귀한 시간과 집중력을 낭비하게 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보면 저와 같이 느끼게 됩니다. 자료 화면을 봐주세요.”
잡아! 안 돼! 비명보다는 웃음에 가까운 여러 목소리가 시끄럽지 않게
막대한 물의 소리가 울린다. 물은 흘러야 물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진실을 잊지 못하게
새하얗게 부서지는 야트막한 폭포가 자유분방한 계단처럼 내려온다.
그 자리마다 이는 무수한 거품은 햇빛 속으로 터지고 터지고
새가 우는데
떠내려가는 느린 수박을 잡으려고
수박보다 느린 친구가 빨라지려고 허우적거리며
팔을 뻗는다. 응원하며 즐거운 친구들의 입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가 햇빛 속에서 흩어진다.
결국 수박을 쪼개어 나눠 먹고
누구는 물로 뛰어들고 누구는 춤추고
누구는 조인트를 말고 그동안
모락모락 연기가 입에서 입으로 흘러나온다.
이 친구들은 모른다. 이 한때가 법정의 자료화면으로 보이리란 것을.
어둑한 법정에서 화면 너머 여름의 햇빛을 향해 지리산은 눈물이 흐를 것 같다고 느끼지만
어느새 형사가 맞은편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형사가 이름이나 생년월일이나 주소 같은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동안 다른 형사가 폰 두 대를 가지고 갔다.
“이거 비밀번호 뭐예요?”
그 순간 물에 빠진 수박을 쫓는 계곡뿐만 아니라 연기 속으로 떨어지는 벚꽃길이나 폭설과 뿌연 실내 같은 각종 계절이 돌고 돌며 사진과 영상 속에서 연기에 휘감긴 친구들의 얼굴이 지나가고 지나가느라 비밀번호를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거부한단 말인가? 지리산은 사생활이라 말할 수 없다든지, 이유랄 거 없이 알려주기 싫다든지, 알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조차 해내지 못했다.
“비밀번호 뭐냐니까요?”
지리산은 중지를 뻗어 네 자리 숫자를 찍는 동안 이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비밀번호를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기억이 날아가기를 바라다가 ‘천지신명님. 지리산님. 어느 분이든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가 그렇게까지 잘못하지는 않았잖아요.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어떤 고통이 뒤따르든 참고 달게 견딜게요. 제발……’ 속으로 빌었다.
잠금이 해제되자 형사는 폰을 보며 제자리로 갔다.
지리산은 생각했다. 최대한 수사에 협조하자. 고분고분하게 굴어 훈방 조치가 되면 친구들과 이 상황을 공유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자.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은 대마 한 주 키웠다고 구속 수사를 하는 건 가혹하다기보다 차라리 기이한 처사라는 상식에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상식적인 관점으로 이루어진 사고방식 덕분에 지리산은 보란 듯이 마당에서 대마를 키웠을 것이다. 이게 뭐라고. 키울 수도 있지. 그래서 형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여기 사람이에요?”
“네. 아까 잡아오신 그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연고가 있냐고. 얼마나 살았는데?”
“3년 전에 이사 왔는데요.” 결정적인 증언이라도 된다는 듯 형사가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왜?”
“지리산에 살고 싶어서요.”
“그냥 살고 싶어서? 다른 이유 없이?”
“다른 이유요?”
“대마 키워서 유통하려던 건 아니고요? 그냥 살고 싶어서 지리산 자락까지 온다고?”
“네. 살고 싶지 않아서 지리산에 이사 온 건 아니거든요.”
“그런 식으로 말꼬리 물고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구는 거 해로워요. 경고야. 우리 다 공무 중이고 감정적으로 다쳐요. 알겠어요? 그럼 뭐 해먹고 살라고 갑자기 시골에 와?”
“애들도 가르치고 공연도 합니다.”
“대마 키우는 양반이 애들을? 이상한데. 키워서 팔아먹을라고 온 거지?”
“저는 그게 대마인줄 몰랐다니까요.” 대마가 대마인줄 몰랐다고 지리산이 억울한 기색까지 지어 비쳐가며 거짓말을 지키는데 폰을 가져갔던 형사가 기세등등하게 나타나 대뜸 화면을 들이밀었다.
“아까 당신 대마 모른다면서. 앨범 여니까 순 대마 사진만 찍어 놓았던데. 모른다는 게 말이나 돼요?”
나는 원래 키우는 작물은 무엇이든 기록 차원에서 촬영하고 보관한다. 올해 가뭄도 심하고 기후도 워낙 오락가락 자유분방하다보니 대파니 해바라기니 다 일찌감치 죽었고 그것만 살아서 사진이 상대적으로 많은 거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걸 허브로 알았다. (이것만큼은 지리산의 진심이었다. 대마는 허브의 여왕이었다. 온갖 질병에 효험이 있고 인체의 항상성 유지에 탁월하다는 의학적 사실이 연구를 통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었다. 다만 수정되지 않은 암꽃만이 강한 약성을 보이기에 여성형 애칭이 붙는 것이었다. 메리제인. 대마의 영적 화신이시여.)
“그런데 화면이 꺼져 있는데 뭘 보라는 거죠?”
형사는 화면을 켜려고 하다가 잘 켜지지 않자 아이폰은 이렇게 켜는 게 맞냐고 물어봐서 지리산은 맞다고 일러주었다.
형사는 끙끙거리다가 이게 원래 자주 안 켜지는 편이냐고 물었고 세상에 원래 자주 안 켜지는 폰이 어딨냐, 그럼 그걸 쓰는 사람이 있겠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것이 왜 안 켜지냐, 그거 나한테 중요한 거니까 고치셔야 한다, 지리산은 말이 흘러나오게 두고 그 폰 안의 화약고처럼 도사린 수많은 데이터를 떠올렸다.
아니, 화약고가 아니라 핵탄두 격납고. 괜히 열어 터지기라도 하면 한반도 한약 연구회 전원은 물론이고 그들의 친구들과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일파만파 조사받게 만들기에 충분한 직접적인 증거로서의 사진, 동영상, 문서 같은 파일들이 꽉꽉 쌓인 창고. ‘제발 안 켜지게 도와주세요. 어머니 자연님. 메리제인님. 마고님.’ 그 폭발의 열이 벌써 느껴지기 때문인지 형사를 나무라는 지리산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충전하면 켜지겠지.”
우물거리던 형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한동안 자기 책상 위나 서랍을 괜히 부스럭거리다 사무실에 다 들리도록 외쳤다.
“혹시 아이폰 쓰는 사람?” 그러자 어느 형사가 손을 치켜들었다.
“제가 쓰긴 씁니다. 근데…… 충전기가 정품이 아니에요.” 겸연쩍게 부연을 덧붙인 어느 형사는 충전기를 가져와 지리산의 폰과 결합했다.
“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둘은 조용히 검은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거 충전 되는 거야?” 약간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형사가 물었다.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어느 형사가 대답했다. 가만히 검은 화면을 바라보던 형사는 “아니, 형사가 정품을 써야지 가품을 쓰는 게 말이 되냐.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게 말이냐. 방구냐. 이게 무슨 슈뢰딩거냐.” 짜증을 부렸다.
그러자 짜증내는 형사를 구경하던 지리산 맞은편의 형사가 귀를 기울이느라 한참 전부터 조용하던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네가 슈뢰딩거도 알아?” 즐거워했고 지리산은 그거 고치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뭔가 잘못을 저질러 속상한 남자애처럼 형사는 “당연히 고치지. 고쳐주고도 남아요. 이제 이거 위에 보내서 포렌식 하면 켜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웠던 파일까지 다 살아나요. 당신 큰일 난 거야.” 고래고래 삿대질을 하다 답답하다는 듯 창문을 열었고 잠깐 창밖을 보다 에잇, 한숨을 뱉곤 책상의 담배 곽을 챙겨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나갔다.
아침만 해도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두 팔을 감싸게 했는데, 열린 창문으로 온순한 바람이 블라인드로 느긋한 장단을 맞추며 실내에 진한 풀 향기를 몰고 왔다.
우글거리는 초록빛 생명력이 잠깐 지리산의 감은 눈 너머 어둠 속에서 줄기를 뻗고 잎사귀를 펼쳤다.
지리산은 어쩐지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은 천지신명이시든, 산신령이시든, 메리제인이시든, 마고님이시든,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누구시든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되뇌고 되뇌었다.
그 시각 집에 돌아온 남산은 전지가위와 워터봉을 적당한 구석에 두고 소파에 앉아 반려견 익점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비둘이었다.
“너희 어디 갔어?”
“나는 집이야.”
“집이라고? 아무도 없는데?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난장판이고?”
“지리산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야.”
“오늘 수확한다고 기념으로 온다 하지 않았어?”
“그러려고 했는데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 고속도로에서 전화가 왔는데 경찰이 왔다고. 그래서 일단 집으로 왔어. 방금 막 들어왔어.”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럼 진작 말했어야 했나. 누구에게?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신이 나 있을 오대산에게? 구리? 오소? 부엉? 은행? 모두에게? 어디까지가 모두지? 어디까지 알아야 하지? 이 일을 알 필요가 있을 얼굴이 지나가고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지나가는데 여기에 공포를 풀라고?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니 뭔가 잘못되었다. 잘못된 일이 일어나버렸다.
남산은 몸을 일으켜 개수대의 고무장갑을 끼고 큰 종이상자에 봉을 넣어 눕힌 뒤 전지가위의 머리로 깨기 시작했다.
잘 안 깨져서 망치를 가져와 큰 조각을 작은 조각으로, 작은 조각을 잘은 조각으로, 더는 조각이라 볼 수 없는 조각들만 남아 쌓일 때까지 땀이 흐르는 동안 땅거미가 졌다.
갑자기 이게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내가 대마를 피운다는. 아니, 우리가 대마를 피운다는. 아니, 우리가 대마 피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식물을, 대마를 사랑한다는 증거.
이전 화: 『코리안 하이웨이』 1. 향수병
다음 화: 『코리안 하이웨이』 3. 모두 불태워라!
전체 연재 목록은 칼럼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Number |
Title |
등록일 |
바로가기 |
| 28 |
영화 ‘풀’ 관객 추진단 “대마를 석방하라”···대마초 비범죄화 요구 선언문 발표
2025.04.26
|
2025.04.26 | |
| 27 |
양지 부상 '대마'…프랑스, 의료용 대마 합법화 추진
2025.03.24
|
2025.03.24 | |
| 26 |
뉴욕주, 합법 마리화나 판매로 세수 1억6180만불 늘어
2025.01.29
|
2025.01.29 | |
| 25 |
"국내서 불법인데"... '이것' 女오르가즘 높여 성기능 치료?
2024.07.03
|
2024.07.03 | |
| 24 |
독일식 '대마초 합법화' …우린 안되나요?
2024.04.20
|
2024.04.20 |
흐음...ㅜ
흐음...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