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리안 하이웨이』 3. 모두 불태워라!

Author
김도
Date
2026-02-26 04:20
Views
408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Column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3. 모두 불태워라!

이튿날 부엉은 서초역 지하철 출구 주변에서 남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원도 있고 서울중앙지검도 있고 변호사 사무실도 많고 거대한 교회도 있어서 담배 피울 일이 많은 동네일 것 같은데 흡연 구역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들어가 후미진 곳을 찾아 파고들어가도 담이든 벽이든 보이는 자리마다 금연구역 딱지를 붙여놓아서 어디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불이라도 붙이면 금방 경찰이든 형광 조끼 단속원이든 와서 과태료 딱지라도 끊을 것만 같은 분위기의 동네였다.

부엉은 두 눈을 끔뻑였다. 침이 따갑게 넘어가도록 피곤했고 절반의 정신은 깨어 있기를 진작 포기하고 그저 다른 절반의 정신에 의해 붙들려 있었다.

정신 차리자. 심각한 상황이잖아. 부엉은 어제 저녁만 해도 접견을 위해 지리산이 수감된 어디 남도 경찰서에 있었다.

지리산의 수확 기념 파티가 있는 날이라서 선물 한 보따리 챙겨 지리산네 대문을 넘었는데 엉망진창으로 초토화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당의 대마가 있던 자리는 파헤쳐져 있어 부엉와 비둘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비둘이 남산과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에게 자신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으니 가까운 지인에게라도 소식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경찰서의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리산은 말했다.

자신은 체포되었고 오늘 훈방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면회를 와주겠냐는 부탁과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부탁을 덧붙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 그리고 시간 괜찮으면 우리 집 옷장에서 옷 좀 가져가줄래. 요즘 좀을 먹더라고.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으니까. 그 위에 침구류도 있는데 그것도 부탁해. 가져도 돼. 그리고 침대 밑에 내가 늘 두는 성경 있잖아. 그걸로 나를 위해 기도 좀 해줄래. 부탁할게. 면회 꼭 와주면 좋겠어.”

부엉과 비둘은 고개를 갸웃했다. “얘가 언제부터 교회 다녔지?”

둘은 옷장을 열어 옷을 꺼내고 옷장 위의 포대를 꺼내 열어보고 나서야 그것이 일종의 암호였음을 눈치챘다.

비둘이 재빨리 삼꽃으로 가득한 포대를 묶어 차에 숨기는 동안 부엉은 침대 밑에서 ‘Holy Bible’이라고 조잡하게 가죽 장정 프린트를 입힌 플라스틱 상자를 꺼냈다.

이거구나! 그런데 세 자리의 비밀번호 다이얼이 있었다. 부엉은 메신저 앱에서 지리산의 생일이 네 자리인 것을 확인하고 물끄러미 벽만 보고 있었는데 비둘이 왔다.

“이게 성경이구나! 안 열고 뭐해?” 부엉은 다이얼을 가리키고 어깨를 으쓱거렸는데 비둘이 손을 뻗어 4,2,0, 맞추는 순간 상자가 열렸다.

“그러면 그렇지.” 생각해보면 당연했고 당연한 것들이 상자 안에 들어있었다.

둘은 잘 말아 놓은 뚱뚱한 조인트 네 대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물론 당면한 상황을 두고 볼 때 그것을 집에서 치워달라는 부탁이었겠지만 부엉은 어째선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이걸 피워도 될까?” 

“너 미쳤어? 지금? 여기서?”

“그럼 이걸 왜 굳이 열어보라고 했겠어.”

“하긴. 근데 이 난장판에서? 방금 막 경찰이 들쑤시고 간 열기도 가시지 않았는데?”

“그렇네. 그럼 차에서 피울까?”

“그럴까? 나 지금 마음이 괴롭기는 해. 하나 나눠 피우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는 하겠다.”

“지리산도 그걸 바라고 여기 숨겨두고 열어보라고 했던 게 아닐까?”

“야. 근데 우리 이따 경찰서 갈 거잖아. 면회는 다녀와서 피우자. 취해서 거기 가는 거 무서워.”

둘은 내심 취해서 경찰서 가는 것도 대단한 경험이고 자랑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제력을 발휘하기로 결심했다.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비둘과 부엉은 도로 상자를 닫고 다이얼을 420이 아닌 아무 숫자로나 돌렸다.

“더 정리할 건 없을까? 부엉이 주변을 둘러보다 데스크탑에 시선을 멈추고 말했다. 둘은 데스크탑을 차에 실었다. 부엉은 성경 떨 상자를 콘솔 박스에 넣었다.

 

 

“그럼 가볼까?” 부엉이 말했다.

“어디로?”

“면회 가기로 했잖아.”

“지금 대마초로 가득한 포대랑 방금 경찰이 들쑤시고 나간 따끈한 집에서 막 꺼낸 컴퓨터를 트렁크에 싣고 경찰서에 면회를 가자는 거야? 좋지. 그러자.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비둘이 말을 마치곤 한 손으로 두 눈을 덮었다.

손 사이로 물이 새어나왔다. 한 손으론 가릴 수 없는 콧구멍으로 겁에 질린 바람이 슬프게 드나들었다. “정신 차려, 바보야. 지금 진짜 심각하단 말이야.”

 

 

“미안해. 나도 너무 얼떨떨해서. 지금 이게……. 리산이 어떡하냐.”

“몰라. 일단 저것부터 숨기고 가자.”

“어디에?”

비둘이 잠깐 숨을 고르다 눈에서 손을 걷어냈다. 취하지 않고 붉어진 눈시울엔 결연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우리집.”

“괜찮겠어?”

“괜찮아. 거기밖에 더 있겠어.”

둘은 증거인멸의 공범이 된다는 꺼림칙한 느낌 속에서도 비둘의 집으로 차를 몰아 포대와 컴퓨터를 비둘의 옷장에 넣었다.

“좋은 옷 고맙네, 리산아.” 비둘은 옷장에 손바닥을 붙이고 말했다.

말해놓곤 피식 웃었다. 꽉 묶었지만 삼꽃 향기가 옷장 밖으로 은은히 배어나오고 있었다.

 

 

“가자. 경찰서로.”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비게이션 화면 속 자동차가 목적지로서의 경찰서에 별 수 없이 가까워지는 동안 둘은 침묵을 지켰다.

차 안에 짙게 차오른 불안의 압력이 한 음절의 말도 빠져나올 수 없게 두 사람의 말문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차가 경찰서 정문을 지나 주차장의 하얀 경계선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동안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부엉이 말했다.

 

 

“나 대마초 피우는 사람처럼 보여?”

“갑자기? 무슨 말이야?”

“면회 갈 때 경찰 만나야 할 거 아냐. 나 떨 피우는 사람처럼 보여?”

비둘은 부엉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도로 닫았다. 뭔가 부엉을 안심시킬 말을 찾느라 표정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응.” 비둘이 대답했다.

 

 

“내가 얘기할게. 난 괜찮게 보이잖아. 내 뒤에서 입만 다물고 있어.”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초록색 양말을 신은 비둘이 말했다.

비둘과 부엉은 심장이 요동쳐서 괜히 이상한 말, 이를테면 “나는 대마초를 피웁니다.”와 같은 절대 해서는 안 될 말 따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경찰은 피로로 인해 무감해진 얼굴로 두 사람의 신원조회를 하고 들여보내주었다.

 

 

그날 저녁, 지리산과 부엉과 비둘은 창살을 사이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은 주로 ①망했다→②어떡하지→③모르겠다→①망했다의 순환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

그러다 비둘이 일단 변호사를 알아보자는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내어 혼란과 불안의 공연한 순환을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부엉은 자신이 사람을 안다며 산악 열차니 산악 케이블카니 산악 골프장이나 산악 테마파크니 나무나 돌을 뽑은 자리에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해서 많은 돈을 쓰게 함으로써 많은 돈을 벌겠다는 기가 막힌 계획을 누가 세우면 그게 얼마나 기가 막히는 계획인지 몸소 알려주러 다니느라 평소 법적인 소음을 견디며 살아가는 생태 운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운동가가 아는 대마 전문 변호사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대마 전문 변호사라는 사람은 최근 워낙에 일이 많아져서 수임이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좋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가능한 가장 빠른 상담을 잡았다. 내일 아침이었다.

비둘은 일이 있어 서울로 못 간다고 했고 지리산은 창살이 있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하니 어차피 집이 서울인 부엉이 가야만 했다.

“좋아. 내가 갈게.”

다만 혼자 상담 받는 것이 내키지 않아 남산에게 내일 아침 시간이 괜찮냐고 메시지를 남기는 부엉과 침통한 얼굴의 비둘은 지리산을 유치장에 두고 나오면서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렸다.

거기 갇힌 사람은 그들 중 누구라도 될 수 있었는데 하필 지리산이 그들 모두를 대신하여 창살에 싸여 자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둘은 차에 타서 경찰서로부터 멀어지는 어둠 속으로 전조등만 밝힌 채 파고들었다.

“나 너무 슬퍼.” 부엉은 운전대를 잡고 울먹였다. 

 

“나도 그래…….” 비둘은 침통하게 숙인 고개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럴 때 하나 피우면 좀 살 것 같을 텐데.”

부엉이 끄덕였다. “맞아. 혹시…… 거기 콘솔 좀 열어볼래? 뭐가 있나?”

 

비둘은 콘솔을 열고 부엉을 책망하는 듯한, 그러나 안도와 의외의 기쁨이 섞인 한숨을 길게 빼내었다.

비둘은 플라스틱 성경 상자를 보란 듯이 얼굴 옆에 들어 보였다. 입꼬리가 약간 웃고 있었다.

 

“홀리쓋.” 부엉의 불경한 말에도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이게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우리 방금 경찰서 다녀왔잖아.” 비둘이 고개를 저었다.

“맞아. 왜 그랬지? 내가 풀은 거기 콘솔에 넣는 습관이 있거든? 그래서 그랬나봐.” 부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열어봐.”

4. 2. 0. 탐스럽게 꽃이 꽉 찬 조인트 네 대의 향기가 둘의 머리 위로 끼얹어졌다.

“지금 너무 슬픈데. 연기가 넘어갈까?” 비둘은 조인트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더더욱 연기를 넘겨야지.” 

나 한 입, 너 한 입. 다시 

나 한 입. 

너 한 입. 

둘은 말없이 연기를 넘겼다. 조인트가 다 타고 나니까

“근데 그래도 잠은 잘 오겠구나 싶다.” 비둘이 느리게 말했다. “음악 들을까?”

“그래. 뭐 들을래? 거의 다 왔네. 음악 듣고 들어가서 꿀잠 자면 되겠다.”

“하나 더 피우면서 들을까?”

“하나 더? 나 지금 되게 충분한데.”

“근데 그건 나도 그래. 리산이가 되게 괜찮은 걸 말아놨네.” 둘은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야, 지금 우리 웃어도 되는 상황이야?”

“야, 세상에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 어딨어. 어느 상황이든 어울리는 웃음이 있는 법이야.”

“정말 좋은 말이다. 맞아. 상황이 나빠 봤자 얼마나 나쁘겠어. 설령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도 우리 다 초범이잖아.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많이 나빠서 빵에 들어간다면 빵에 들어가는 거겠지.”

“그리고 우리가 뭐가 나빠. 우리가 뭐 나쁜 짓 했어? 좋은 일이면 좋은 일이지 나쁜 짓이 아니잖아.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도움 받는 애들도 우리 중에 많잖아.”

“난 특히 배가 편해져서 좋아. 나 배가 예민하거든. 아까까지만 해도 배가 쓰렸는데 지금 멀쩡해. 맞아. 무서워 말자. 당당하게. 용감하게 적응하자. 저기 세울까?”

“아, 벌써 다 왔네. 음악 하나 듣고 가자. 생각난 거 있어. 그거 있잖아. 핑크 플로이드 노래 중에 내가 왜 죽는 걸 무서워해야 하냐고, 그럴 이유가 있냐고 내레이션 나오고 가사 없이 비명 같은 목소리만 연주되는 노래.”

“아, 그거. The Great Gig in the Sky.”

피아노 연주가 차 안의 침착한 어둠에 스미는 동안 비둘은 성경 상자에서 조인트를 꺼내어 불을 스미게 기울였다. 둘은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오랜만에 들으니까 정말 좋다.”

“그렇네. 나 사실 좀 무섭긴 한데 음악은 진짜 좋다.”

“야, 우리 이것까지만 피우고 더 피우지 말자.” 부엉이 결연한 눈으로 말했다.

“이 안에 두 대 남았어. 너 그거 서울 가는 길에 피워. 난 이제 잘 거지만 넌 갈 길도 멀고 할 일도 있잖아. 다른 하나는 일마치고 자기 전에 피워.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피우지 말자.”

“언제까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부엉이 물었다.

“언제까지 뭐?”

“언제까지 안 피워?”

“모르지. 피워도 괜찮을 때까지?”

“그런 때가 무슨 때지? 비범죄화?”

“그러면 좋겠다. 요새 세계 추세가 그렇잖아. 우리에게도 좋은 세상이 와주지 않을까.” 비둘이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좋은 세상이 안 오면?”

“안 오면 속상한 거지.”

“아니. 좋은 세상 안 오면 대마초 안 피워?”

“글쎄. 그건 아니겠지만. 아닌가? 그런가? 모르겠다. 지금은 모르겠어.” 

연기도 음악도 빠져나간 차는 심하게 조용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지금은 일단 무사히 올라가. 같이 못 가서 미안해. 부탁할게.”

“맡겨줘. 아, 남산 연락 왔다.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했어. 그럼 잘 자.”

비둘이 차문을 닫고 멀어졌다. 비둘이 안 보이니까 부엉은 양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가자. 운전대를 놓지 말고 밤을 가로지르자.

도로는 갈수록 깊어지는 어둠이라서 파고 들수록 밤 속으로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졸음 쉼터가 있다고 해서 부엉은 졸음 쉼터로 갔다.

차가 덜덜 떠는 것이 괴로워서 시동을 꺼주었다.

숨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 들리지 않았다.

깜빡 자버렸구나. 다행히 사위는 여전히 어둡고 조용했다.

설마 이게 내일 밤은 아니겠지. 화면의 날짜를 확인하고 부엉은 안도의 한숨을 빼냈다.

힘드니까 하나 피우고 가자. 부엉은 어둠 속에 연기를 섞었다. 한결 나아져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운전대를 놓지 말자. 해가 떠오르게 두자. 부엉은 집에 들러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잠깐 눈을 감았다.

입만 물로 헹구고 열차를 타고 서초역으로 갔다. 출구를 빠져나와 넋이 나간채로 출구를 향해 섰다.

 

부엉이 두 눈을 끔뻑거리는 동안 온갖 양복이나 향수나 골라 입은 옷들이 그의 곁을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계단을 올라오며 한 칸 한 칸 남산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보이는 것들 사이의 남산과 유사한 동작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내버려두고 있는 것에 가까웠는데 그건 피곤과 낙담에 지친 부엉의 정신으로 보아도 여태 만났던 그 어떤 남산보다도 수척해서 남산처럼 보이지도 않는 인간의 형상 때문이었다.

계단을 다 올라온 남산이 코앞까지 다가와 부엉, 부르고 나서야 부엉은 남산을 남산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둘 다 입 안이 바짝 말라 까끌거렸다. 그들은 지도 앱이 가리키는 곳까지 지도 위를 이동하는 두 개의 묵묵한 점이라도 된 것처럼 걸었다.

그곳엔 회전문이 있었고 평소 많은 사람이 청소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호박색 불빛의 말끔한 대리석 로비가 있었고 앨리베이터 두 대가 운행 중인 복도가 있었다.

부엉은 여러 로펌의 명패 중 하나를 “저기 있다!” 감탄하며 가리켰다.

양복을 입고 향수도 입은 이 사람 저 사람이 이 층 저 층으로 내렸고 남산과 부엉도 그 층에서 내렸다.

어떻게 오셨냐길래 부엉은 생태 운동가가 소개해준 대마 전문 변호사의 소개를 받아 어제 통화로 상담 약속을 잡고 왔다며 횡설수설 따가운 두 눈을 끔뻑였다.

“어느 분 만나러 오셨죠?” 백변. 이름을 대자 안내받은 사무실 의자에 백변이 앉아있었다.

“백 변호사입니다.” 왠지 스스로 라면을 끓여먹는 편은 아니지만 누가 끓이면 자주 맡기 어려운 냄새에 이끌려 지금 라면 끓이는 거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확인된 사실을 구태여 물어본 뒤에 새침하게 우유 반 컵을 넣는 것이 좋다고 충고할 것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그리곤 한 젓가락 먹겠냐는 제안을 기어코 받아낼 때까지 부엌을 얼쩡거리며 주스나 물 같은 것을 마시다가 냉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맛만 봐보겠다고 말끝을 흐린 뒤에 한 그릇을 먹어치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내미는 손을 잡아 흔들어보니 손바닥은 부드럽고 약간 축축했다.

남산은 티셔츠에 손바닥을 몰래 닦으며 코로 올라오는 백단목향 거품 냄새를 느꼈다.

“어제의 통화로 대강 들었지만 자세히 들어볼까요?” 

 

이 사람이 말하면 옆 사람이 부연하고 저 사람이 말하면 옆 사람이 정리하며 남산과 부엉은 어제 발생한 사건과 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만 했던 일들부터 자세히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자세해질수록 백변의 얼굴은 어둡게 굳어갔다.

“그러니까…… ‘한반도 한약 연구회’라는 이름의 모임이 있어요. 이 모임의 회원은 전국에 걸쳐 열댓 명은 넘는데 대마를 각자 한 주씩은 기른다고요.” 남산은 손을 저으며 정정했다.

“이게 뭐 그렇게 거창한 단체는 아니고요. 그냥 대마 좋아하는 애들 친목회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한 주보다는 보통 서너 주 씩은 키워요. 더 키우는 애들도 많아요.” 부엉이 손을 들었다.

“제가 8주 키워요. 숫자 8을 좋아하거든요. 무한대.” 검지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는 부엉을 보다가 백변은 이마를 짚어서 잠시 두 눈을 가려주었다.

“회원이 공식적으로 열댓은 넘는데 비공식적으론 스무 명도 넘을 거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이에요?” 남산이 부엉을 보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뭐 나들이든 흡연회든 연구회 행사를 열면 거의 무조건 오는 애들이 있고, 무조건 오는 애들 친구도 가끔 있고, 아는 사이인데 대마초를 좋아하든 대마를 키우든 아니면 그것도 아닌데 올 때마다 좀 피우고 가거나 나눠받고 가는 친구들도 있고, 뭐 기타 등등 포함하면…….”

 

“서른도 넘겠죠.” 부엉도 으쓱거렸다.

“서른이 뭐야. 마흔도 넘겠지” 남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마흔도 넘는 사람이 대마를 키우고 나누고 피우는 단체가 한한연인 거네요?” 백변은 일부러 더 무겁게 말하려고 말을 가슴의 밑바닥부터 긁어와 입 밖으로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근데 꼭 그것만 하는 건 아니고요.” 남산이 손바닥을 펴 정정했다.

“그게 제일 중요하지만.” 부엉이 눈을 번뜩이며 강조했다.

“다들 자연적인 삶과 생활에 관심이 많아요. 지구에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이랄까요. 대마도 그래서 아끼고요. 가령 면보다 대마로 옷을 지으면 환경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장점이 많아요.”

“우리 허준 묘도 참배 갔다가 왔어요. 명실상부 한반도 허브의 왕이시잖아요. 묘가 민통선 안쪽에 있는 건 아세요? 군부대 확인 받고 들어가요. 검문소에 신분증도 냅니다.”

“근데 산청엔 동의보감 마을인지 촌인지 그런 것도 만들었어요.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유지태인지 유의태인지 허준 스승의 고향이라고요. 근데 소설 쓰려고 만든 인물이지 그런 사람은 실제로 없었거든요. 소설과 현실을 혼동해서 없는 사람 동상도 세우고 곰도 키우고 나무도 밀고 건물도 짓고 막걸리도 마시려고 그냥 만든 거죠.” 남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잠깐만요. 잠깐만.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백변은 어떤 이유에선지 조금은 그러나 확실하게 노기 어린 목소리로 남산과 부엉을 혼내기 시작했는데, 여러분은 이게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전국적인 규모의 대마 카르텔 되는 거 순식간이다, 생태주의? 그런 거 잘 모르긴 하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이 모임의 대마 비범죄화 운동 성격이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느냐, 그 한반도 마약 연구회인지 한약 연구회인지 명단이나 천하제일 삼꽃대회? 행사 포스터나 사진이나 준비 자료 같은 것도 그 망가져서 안 켜지는 폰에 다 들어있다고 하지 않았냐, 그거 포렌식 해서 열리기라도 하면 여러분 줄줄이 엮여 사십 명이고 오십 명이고 연쇄적으로 다 터지는 거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등 열변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백변이 상기시키는 그 온갖 암담한 미래가 한꺼번에 지나가고 남은 것은 겁에 질려 창백한 고무장갑처럼 마비된 남산과 부엉 뿐이었다.

급한대로 남산은 일단 자신의 돈으로 수임료를 결제했다.

혼자서 부담하기 당혹스러운 액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또한 얽혀 있는 만큼 돈을 내야 마땅했고 자신과 같은 책임감을 느낄 친구들이 보탤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편의점과 밥집과 술집 따위가 일제히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다 지쳐 늘어진 골목을 걸으며 담배를 피웠다. 가만 보니 금연 딱지만 곳곳에 붙여놓았을 뿐 바닥에는 어디든 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남산과 부엉은 “어떡하냐.”, “몰라.”, “하. 망했지, 뭐.” 같은 말과 한숨을 공연히 빼내며 지나간 골목을 다시 지나고 돌은 구간을 다시 돌아가며 절망의 미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두 마리 생쥐처럼 갇혀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눈앞이 깜깜했고 귀는 먹먹했다.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저는 지리산 씨를 빠르면 오늘, 늦더라도 내일 중으로 만나고 올 테니 여러분은 이 일에 얽힌 회원, 친구, 사람, 전부 연락을 돌리세요. 문제가 되는 것들, 대마, 사진, 문서, 제가 모르는 뭐든 간에 깔끔하게 정리하세요. 그리고 오십 명까지는 아니어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회원들은 모두 이틀 뒤에 오늘 이 시간에 이 사무실에서 만납시다. 다 알아 들으셨죠?”

백변의 말이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었지만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다시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 힘겨운 이야기를 하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힘겹게 꺼낼 용기가 당장은 없었다.

당장은 현실을 마주보기 위해 눈꺼풀을 걷어낼 힘이 없어서 담배를 피우고 목이 아파 음료수를 들이키며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과 법원과 서울중앙지검을 빛이 드는 대로로 밀어내기 위해 고깃집과 횟집과 바와 술집과 편의점과 그늘과 꽁초와 악취로 멍든 골목을 벗어나지 못했다.

불안의 그림자가 바짝 따라붙어 심장과 목을 쥐어짰다. 이런 불안을 모두에게 나눠주어야 했다.

결국 남산과 부엉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변호사를 만났다며 구리, 비둘, 오소, 벌, 범 등 친구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괴로움으로 굳어버린 수화기 너머의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 필요가 있는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파괴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남산의 파괴

 

비가 내려도 한 모금의 물도 머금을 수 없을 지경으로 말라버리면서 생명력을 아주 잃어버린 폐허 도시의 야생 대마처럼 남산은 소파에서 흘러내리다시피 누워 가끔씩만 익점이를 쓰다듬었고 해가 졌다.

불을 켜지 않으니까 손가락을 하염없이 적시는 익점이의 혀가 삽시간에 차오른 어둠에 잠겨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핏기를 잃은 축축하고 더운 살의 동작을 오래도록 망연히 보다보니까 끊임없이 엎어지는 파도나 끊임없는 낮과 밤의 교대식 아래서 피고 지고 무너지고 움트는 한해살이 식물의 끊임없는 윤회와도 같은 동작이 떠올랐다.

밤이구나. 이 밤이 지나면 낮이 올 테고 밝겠구나. 밝은 곳에서는 숨기 어려운 만큼 숨어도 숨은 기분을 느끼기 어렵겠지.

나는 감쪽같이 숨은 느낌이 필요한데.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하다못해 익점이의 슬픈 두 눈으로부터도. 그런데 아무것도 숨겨지지가 않네. 나는 숨길 것이 있는데. 이 모든 것 말고도 감추어야 할 것. 정리해야 할 것. 이를테면 이렇게 캄캄해도 아주 약간 벌어진 재배 텐트 지퍼의 틈으로 새어나오는 보랏빛 재배등을 쬐며 불이 꺼지면 꿈꿀 준비를 하고 있을 귀여운 ‘남산’처럼 말이야.

나는 늘 잘 말린 삼의 꽃을 불살라 마실 때면 대마가 햇빛을 마시는 느낌이나 대마가 잘 때 꾸는 꿈이 궁금했었지. 취기를 자세히 음미하며 이런 느낌인 걸까? 이런 기분인 거야? 삼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그렇다고, 맞다고 씩 웃으며 꽃잎을 끄덕이기라도 하면 나는 다음 생엔 대마로 태어나야만 할 테니까.

재배등의 빛은 어떤 맛이야? 아직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이제는 물어볼 수 없게 ‘남산’을 정리해야만 하겠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처음부터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던 것처럼, 싹이 튼 적도 없는 것처럼, 대마를 키우거나 피우거나 좋아하거나 심지어는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이 아름다운 식물과 무관한 사람으로 보여야만 하겠지.

대마 잎이 프린트된 티셔츠와 자켓과 모자와 양말도 버리고 컴퓨터 배경화면도 바꿔야만 하겠지. 그것이 내가 처한 상황이고 우리가 처한 상황이겠지. 우리는 아주 안 좋은 상황에 처하고 만 거야.

어떡하지. 어느새 남산은 소파에서 일어나 재배 텐트를 활짝 열어젖히고 아직 개화기도 맞지 못한 성장기의 어린 ‘남산’을 바라보며 아직도 전지가위를 묶은 초록 리본을 풀어 떨어트렸다.

피할 수 없는 가위질을 미리 상상하느라 움찔거리는 손과 팔과 어깨 근육이 침통한 적막을 찌릿찌릿 감전시켰다.

남산은 ‘남산’의 밑동을 날과 날 사이에 가두고 잘라냈다. 너무 얇고 연해서 자르는 느낌조차 희미했다.

속으로 비명을 질러대느라 시끄러운 내면의 귀를 틀어막고 식물의 조각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 수 있게, 마치 꽃집의 꽃다발 작업대 주변 바닥을 쓸어 담은 모양처럼 가위질하여 검은 비닐 봉투에 넣고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또 뭘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텅 빈 재배텐트를 멍하니 보다가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도 갑자기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 서서 남산은 생각했다. “이게 왜 비어있지?” 물이니 흙이니 알 수 없는 조각이니 남아 있는 재배 텐트의 하얀 바닥으로 공연히 재배등의 보랏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지. 남산은 재배등을 끄고 떼어냈다. 소형 선풍기도 떼고 전자식 온도습도계도 떼고 텐트 기둥을 빼내어 쌓고 걷은 텐트를 잘 접으니까 이제 그 자리엔 뭐라 할 게 없었고 다만 지저분했다.

이 구석이 원래 이렇게 생겼구나.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처럼 뭐가 너무 없어 보이네.

그러고 보면 이 집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들인 가구가 재배 텐트였으니까. 성인이 된 이후로 언제나 대마초와 함께해왔지. 신병 위로 휴가가 잠깐 사이 나를 지나쳐버려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부대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강압적으로라도 끌고 갈 수 있었던 힘은 담배 곽의 궐련 하나하나에 섞어둔 삼의 꽃 조각들로부터 나왔었지.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자판기 주변 으슥한 구석에서 후임 교육 차원에서 몇몇 선임한테 몇 대 맞고 내 거든 걔 거든 두개골에 실탄을 통과시키는 상상을 하다가도 으슥한 구석에 홀로 남아 담뱃잎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담배를 하나 피우면 이 선임 저 선임 그 새끼 코고는 한가운데의 베개에 머리를 눕혀도 어느새 세상은 그렇게까지 괴롭기만 한 곳이 아니었고 오히려 고통 받는 이 나라와 이 세상의 군인들을 위한 기도까지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 끔찍한 곳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기를. 또 비행기를 탈일이라도 생기면 언제나 식문화나 인사말 같은 사소한 상식보다도 먼저 그 나라의 대마에 대한 태도, 관련법, 구하는 법을 숙지하고 그 땅에 착륙했다.

대개 한국과 비할 데 없이 쾌적한 흡연을 해변이나 친구의 방이나 커피숍에 앉아 즐기면서 한국처럼 심하게 뻣뻣해서 무서운 나라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런 특권적인 행복을 누리다가도 그 대가를 치르듯이 연기라곤 담배나 고깃집이나 공장이 대부분일 서울로 돌아오더라도 조인트 하나는 금세 말 수 있었다. 메리제인의 은총을 가득 입은 삶이었다.

이 삶에서 대마가 없었던 적은 대마를 만난 이후로 없었다. 남산은 가빠오는 숨을 느꼈다.

어쩌면 이 삶은 이제 대마 없이 살아야 하는 날만을 남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세상에 남아 살아가는 일을 삶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걸까?

남산은 콘크리트 정글의 먼지를 덮고 힘을 잃어가며 축소되어가는 풀 한 포기처럼 자신이 자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뿌리 뽑힌 고아가 된 것 같았다.

그런 기분에 빠져 울컥울컥 허우적거리듯 남산은 망치와 드라이버와 갖은 애를 써가며 폰을 부수어 칩인지 뭔지 내용물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가위질하고 빻았다.

어떤 이유에선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남산은 밴드를 붙이고 익점이를 불렀다.

“익점아. 산책 가자.” 익점이는 눈에 띄게 무력한 주인과는 상반된 눈빛으로 펄쩍거리며 목줄을 반겼다.

익점이가 다른 개들이 남긴 체취 주변을 킁킁거리며 그 의미를 읽어내고 자신의 뜻을 여기저기 남기는 동안 남산은 폰 조각을 이 하수구, 저 하수구, 공용 쓰레기통 따위에 나누어 버렸다.

인적이 없어도 누가 어디서든 쳐다보고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폰에 온갖 대마 관련 데이터가 있어서 부수고 몰래 버려서 증거를 인멸하려는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남산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었다. 대마를 기르고 키우는 삶을 살아오면서 소문으로 듣거나 경험자로부터 직접 듣거나 하면서 경찰 수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태도와 대응이 도움이 되는지를 배우고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자신이 상상 속에서 어떻게 구는지 지켜보기도 했으니까.

상상 속의 남산은 의연했고 침착했으며 법정이나 빵에 들어가서도 당당했다. 하지만 막상 최악의 상황이 닥쳐보니 미리 상상된 최악보다 훨씬 최악이어서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곧 불이 번지거나 바닷물이 밀려온다는 것을 먼저 아는 작은 짐승처럼 숨이 얕고 가빴다.

지리산이 잡혔다고 남산의 폰을 압수하여 샅샅이 뒤지고 살피는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남산은 폰을 산산조각 내어 아무도 모르게 여기저기에 나누어 버릴 필요가 없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뿌리내릴 자리조차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요동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다. 대마를 키웠다고 지리산이 구속되고 겁에 질린 친구들이 생활환경을 파괴적으로 정리해야 할 만큼 대마에 적대적인 사회는 너무나도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어서 우스꽝스러운 구석까지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대마초 흡연 사실이 적발되기라도 하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만 했다.

무엇을? 대마초를 피웠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느끼기에 사람들이 대마초를 피운 사람을 용서한 것 같은 느낌이 나기 전까지 대마초를 피운 사람은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 소셜 서비스 계정에 올리거나 아무튼 눈에 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됐다.

이를 사람들은 자숙이라 말했고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거나 여부를 판단할 근거로서의 대중적인 막연한 인상을 사회적인 분위기라 일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대마초는 비범죄화되거나 합법화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와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루는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1976년 이전까지만 해도 삼은 합법, 불법 어느 쪽으로든 법적인 관점에서 생각된 적이 없는 이 땅의 풍경이었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어느새 삼을 증오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적개심이 가능했기 때문에 남산의 과잉된 불안과 공포도 가능했다.

때문에 폰 부스러기를 버리고 인적이 없는 공원의 흙을 파내어 비닐봉투의 풀 조각들을 부어 묻는 일 또한 가능했다.

‘남산’은 흙이 되어 다른 식물을 먹이고 세상으로 초대하고 세상으로 거두는 집이 되어주겠지.

긴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익점이는 만족스럽다는 듯 물을 마시고 잠에 들었다.

남산은 소파에 앉아 멀리서 가까워졌다가 다행스럽게도 다시 멀어지는 사이렌을 여러 차례 들었다. 남산은 갑자기 지독하게 외로워 랩탑을 열고 은행에게 영상 전화를 걸었다.

 

 

은행의 파괴

 

“여, 어쩐 일로?”

“그냥 전화해봤어. 뭐하고 있었어?”

“나 음악 듣고 있었지.”

“그렇구나. 넌 괜찮아?”

“응. 괜찮지. 넌 안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냐고? 너 아무것도 몰라?”

“그건 아닌데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는 해. 난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지리산 얘기 못 들었어?”

“지리산? 지리산한테 무슨 일이 있어?”

“있어. 지리산한테 안 좋은 일이 있어.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있거든.”

“왜? 지리산이 뭐 나쁜 일을 했어? 그럴 애가 아닌데.”

“걔가 그럴 애겠어. 마당에 심은 대마초 신고가 들어 왔나봐. 어제 뽑고 잡아갔어.”

“신고가 들어왔다고? 아니, 그걸 누가? 왜? 나쁜 사람이네. 신고를 다 하고.”

“아무튼 그렇게 됐어. 구속 수사 중인데 유치장 구치소로 이감될 것 같아.”

“큰일 났네. 어떡해?”

“모르겠어. 망했지, 뭐. 지리산 폰에 한반도 한약 연구회나 천하제일 삼꽃 대회 사진이나 자료나 포스터다 들어 있잖아.”

“맞네. 맞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나든 누구든 아는 애가 얘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아냐. 괜찮아. 모르고 있는 동안이 더 좋았던 것 같아.”

“근데 알아야지. 너 단톡방에도 있고 자료나 명단에도 다 나올 거 아니야.”

“그렇지. 와, 정말 큰일이네. 나 어떡하지?”

“몰라. 망했어.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그 자료 다 들어 있는 폰이 경찰서에서 조사받는데 갑자기 망가졌대. 안 켜진대. 그래서 뭐, 상급 기관에 보내서 포렌식인지 뭔지를 할 거래.”

“그거 열리면 다 끝이네. 뭐야, 그럼 자료가 안 들어 있는 폰도 있어?”

“걔 폰 두 대야. 다른 거엔 지리산이 대마 찍은 사진이랑 천하제일 삼꽃 대회 포스터 하나만 있대.”

“그걸 다 누가 알아온 거야?”

“어제 부엉이랑 비둘이 접견 갔었어.”

“그 포스터엔 뭐가 있었지?”

“아, 그거 내 폰에도 있어. 잠깐만. 내 폰이 어딨지? 아, 나 폰 없어.”

“폰이 왜 없어?”

“부숴서 버렸어. 뭐 문제될 거 있을까 봐. 방금 말한 그 포스터 같은 거.”

“나도 부숴야겠네. 나도 그런 거 많은데. 그 포스터도 있겠네. 지금 부술까?”

“그러면 통화를 못하잖아. 그보다 포스터 있으면 무슨 내용 있는지 좀 봐봐.”

“잠깐만…… 

 

 

<천하제일 삼꽃 대회>에 한반도 한약 연구회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식순~

 

점심 식사: 대마초를 넣어 향과 취기가 그윽한 서구식 국수 요리

 

잘 키워보세! 대마 세미나: 자신의 똥과 오줌으로 기르는 대마

 

천하제일 삼꽃 시연 및 심사

 

심야 흡연회

 

축사

세상을 좀 살만하게 느끼기 위해서, 병을 치료하고 조절하기 위해서, 친구가 좋은 거라고 주길래 피워봤는데 진짜 좋은 거라서, 좋은 게 좋은 거라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대마초를 피우고 키워왔지만 대마초를 사랑한다는 점에선 모두 같은 마음이라 봐도 좋을 겁니다.

<천하제일 삼꽃 대회>는 단순히 높은 THC 함량에 기반한 강력한 취기를 기준으로 경쟁하여 우수한 약성의 대마초를 선별하기 위한 대회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진심과 정성을 쏟아가며 만나고, 성장을 지켜보고, 거두어야했던 친구와의 나날을 회원들과 연기의 형태로 나누는 의식입니다. 부디 이 행사가 ‘한반도 한약 연구회’의 대마와 함께하는 행복하고 안전한 인생과 살만한 세상을 가꿔나가는데 필요한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대산 드림.’

 

 

와……. 오대산 축사 편지가 통째로 들어있는데?”

“오대산 지금 암스테르담 나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말하지?”

“이건…… 거의 자수잖아. 해외에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다행이라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대로 말해줘야지. 좀 나중에. 지금은 못하겠어. 너무 녹초야. 변호사랑도 얘기해봐야지.”

“아, 변호사 선임했어? 뭐래?”

“오늘 상담 받고 일단 내 돈으로 수임료 냈어. 나도 좀 무리하는 거라 친구들 도움이 필요해. 좌우간 문제될 거 있으면 다 정리하고 모레에 그 변호사 사무실에 관계있는 친구들 다 모이기로 했어.”

“나는?”

“너도 와야지.”

“그치. 돈도 보태야지. 정리는? 넌 무슨 정리를 했는데?”

“난 오늘 한한연 친구들한테 전화를 몇 통 했어. 정리하라고. 너한테도 했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미안.”

“괜찮아.”

“그리고 대마를 뽑아 잘게 조각내어 공원에 묻었어.”

“맙소사.”

“폰도 부수고 잘라서 하수구니 쓰레기통이니 익점이 산책시키면서 여기저기에 나누어 버렸고.”

“아, 맞다. 그랬다고 했지. 내가 괜히 또 말하게 했네. 그럼 난 어떡하지?”

“너도 정리를 해야지. 식물이든, 그라인더나 파이프든 뭐든 그런 거면 말야.”

“나 키우는 거 없어. 지지난 주에 다 수확해서 다듬고 말리고 유리병에서 숙성 중이었어.”

“얼마나?”

“지금 숙성한지 10일 넘었어.”

“조금만 더 있으면 딱 좋겠네……. 양이 얼마나 되는데?”

“모르겠어. 200g은 훌쩍 넘는 것 같은데.”

“와. 엄청나다. 말린 거?”

“응. 말린 꽃만 200g이 넘어. 어떡하지?”

“뭘 어떡해?”

“이거 다 정리해? 버려? 어떡해?”

“몰라. 망했어.”

“다 태워야겠다.”

“진심이야?”

“다 태워서 마셔야겠다. 피워버려야겠다!”

“뭐? 넌 지금 연기가 넘어가? 어디 가? 야. 아이고…….”

“보여? 가득 찬 거? 이런 게 두 병이야.”

“그걸 다 피우겠다고?”

“왜? 날 얕보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아, 이 많은 걸 혼자서 다 피우냐고? 그럼 올래?”

“어…… 아냐. 난 지금 그럴 마음이 아니야.”

“그래. 난 지금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좀 피워야 좋을 것 같아…… 콜록콜록!”

“나도 그래.”

“뭐가 그래?”

“마음이. 앞으로 대마 없이 살아야 하나?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 갑갑하고 막막한 곳에서?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밧줄에 매여 버둥거리며 흔들리는 것처럼 괴로워.

난 풀 없이 살아본 적이 없잖아. 난 군대에서도 피웠잖아.”

 

“와. 너 군대에서도 피웠어? 미쳤다.”

“내가 말 안 했어? 나 군대에서도 피웠어. 담배에 섞어서.”

“미쳤다. 어땠어?”

“군대에서 생기는 평범한 일들로 죽고 싶은 마음이라도 들면 하나씩 피웠지. 그러면 방금 전까지 암담하게만 보이던 삶이 그렇게까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고.”

“나 지금 정말 공감돼.”

“그래?”

“응. 내가 지금이 그래. 아까 너한테 지금 상황 얘기 들으면서 가슴이 조이고 꽉 막힌 것 같았거든? 목에도 뭐 걸린 것 같고. 근데 지금은 안 그래. 콜록콜록! 아…… 지금은 콜록콜록! 나쁘지 않아. 지금이란 게 그래. 이걸 언제 다 피우지? 껄껄껄, 콜록콜록콜록!”

“야, 나 지금 진지해. 아니다. 우리 지금 진지해. 진지한 상황이야.”

“그래, 나도 진지해. 내가 지금 안 진지해? 차마 이걸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오늘 내일 다 피우겠다잖아. 얼마나 바쁘고 버겁겠어. 성공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워. 너도 그냥 남은 거 다 피워.”

“검사에서 THC 나오면 어떡해.”

“무슨 검사. 소변 검사? 검사한대? 검사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야? 지리산 씨 친구 되시죠? 여기 오줌 좀 싸주시죠? 경찰이 갑자기 그러겠어? 그리고 소변은 2주 전부터만 안 피워도 안 나와. 머리는 밀면 되지.”

“밀라고? 근데 사실 전부터 빡빡이든 탈색이든 해보고 싶긴 했어.”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머리 밀기 딱 좋은 기회야. 2주 안에 소변 검사 할 일이 있겠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곤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으러 왔으면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받아들여야지. 뭐 어쩌겠어.”

“그래, 맞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근데 나한테 뭐가 있나? 찾아볼게……. 아, 이게 있었네! 어차피 정리해야 했는데. 덕분에 찾았어. 고마워.”

“그래. 이게 다 괜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전자담배 액상이야? 잘 됐다. 피워!”

“그래…… 콜록콜록!”

“그래, 인생 뭐 있어.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래, 우리가 뭐 나쁜 짓 했어. 최악의 경우 몇 달 살겠지. 거의 집유일 거고.”

“그래. 빵에 가게 돼서 빵에 가면 또 그땐 빵이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을 거야.”

“그래. 그렇다니까. 체념하면 편해지는 게 많아.”

“그래! 야, 그럼 나 너네집 가도 돼? 같이 정리하게.”

“그래! 둘이면 정리가 두 배는 수월하겠구나. 조심히 와.”

“그래! 곧 출발할게.”

 

 

오대산의 파괴

 

제이드는 좋은 애였다.

제이드는 암스테르담 시내의 어느 레지던스에 짐을 풀고 정리를 마친 오대산이 복도나 정원이나 카페테리아를 어슬렁거리다 만난 입주 작가였다.

통성명을 섞어 인사를 나누다 대화는 자연히 그들이 앞으로 얼마간 머물 도시에 관한 잡담으로 넘어갔다.

자연히 둘은 서로 대마초를 피우는지, 피운다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했고 서로의 대마초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 둘은 서로를 향해 국가와 인종과 문화적인 차이를 가뿐히 뛰어넘는 인류애적인 사랑이 싹트는 따스함을 느꼈다.

오대산은 암스테르담이 처음이니 자신이 몇몇 커피숍을 추천해주고 안내해주겠다며 제이드는 잔뜩 들떠 말했다.

오대산은 제이드가 데려간 첫 번째 커피숍에서 크고 실한 조인트를 나눠 피우다 당황했다.

두 모금 마셨을 뿐인데 취기가 너무 강렬해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고 팔을 뻗어 주스 병을 잡기도 버거웠다.

아무도 없다면 그대로 의자에서 흘러내려 어느 정도 취기의 농도가 희석될 때까지 시간을 들여 바닥에 누워 있고 싶었다.

그러나 오대산은 필사적으로 몸과 정신을 붙잡았는데 그건 자신이 대마를 좋아한다고 호들갑을 다 떨어놓은 마당에 조인트 두세 모금만으로 무너지는 갓난애 같은 내성의 소유자로 비칠까 무섭고 치욕스럽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마 복용자로선 가장 가혹한 수준의 인식과 그러한 인식에 기반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시민 감시 체계와 이상하리만치 대마를 향한 증오로 가득한 도덕관과 처벌 수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은 한반도 한약 연구회라는 모임을 가꾸고 대마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대마는 피울수록 내성이 생겨 높은 THC 농도의 삼꽃도 자주 피우다보면 그 취기가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대산 신체의 THC 내성이 한한연의 ‘그것’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의 여러 대마 회사가 잡혀갈까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이고 쾌적한 환경에서 정성껏 길러낸 온갖 종자들의 강력한 THC 농도에 뚫려버린 것뿐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지내면서 이런 것들을 피우다보면 주변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오대산은 이 사실을 제이드가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제이드는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 않는 걸까? 그러면 어색하지 않게 자신이 한국에서 왔으며 한국의 대마 사정을 밝힐 수 있을 텐데. 

 

“근데 넌 어디서 왔어?” 참지 못하고 오대산은 복화술사와 인형처럼 어색하게 신체와 말을 조응시켜서 물었다. 

“어디서? 음…….” 제이드는 조인트를 깊게 두세 번 빨고 마치 십이지장을 연기로 훈연하듯 머금고 있다가 기침도 없이 자욱하게 뿜어내곤 잘 다듬은 눈썹을 살짝 구겼다.

“글쎄. 세계? 미국 서부에서 몇 년 살고 페루에서도 몇 년 살았고 태국 북부나 네팔에서도 살았고 유럽, 뭐 그러니까 나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제이드는 말을 마치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주 재밌는 일이라는 것처럼 웃었다. 물론 오대산에겐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았다. 

 

“난 한국에서 왔어.” 그래서 오대산은 말했다. 

“오, 그렇구나. 나 케이팝도 듣고 케이드라마나 케이영화도 좋아해.” 제이드는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처럼 두 눈을 크게 떴다. 커다란 눈에 한국 문화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기는 것처럼 대마의 취기가 두 안구에 붉게 모이고 있었다.

“그러면 한국이 대마 불법이라는 것도 알겠구나? 엄청 잔인한 수준으로 말야.”

“그럼 알지. 알고 말고.”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인트를 피우다 상상력이 엄청 잔인한 수준이라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었는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남쪽, 북쪽?”

“남쪽이지. 북쪽은 불법 아니야.” 오, 그렇냐며 처음 알았다고, 북한이면 대마 피우면 총으로 쏠 것 같았다며 좋아하는 제이드에게 북한은 대마가 불법이 된 적이 없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오대산은 그만두고 재떨이에 떨어진 불똥에서 피어오르는 가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잘 키우고 잘 수확하여 잘 가공한 대마였다.

한한연의 ‘그것’, ‘오대산’이나 ‘남산’이나 ‘지리산’으로도 불렀지만 이름 모르는 토종인 ‘그것’과 함께한 한한연의 온갖 모임과 즐거운 한때도 떠올랐다.

오대산은 블루 드림, 오지 쿠시, 화이트 위도우, 사워 디젤, 수퍼 레몬 헤이즈 등 커피숍 투어를 하며 갖가지 종자의 삼꽃을 피우는 동안 자꾸만 제이드에게 ‘그것’에 관해 얘기하고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기서 살 수 있는 근사한 이름의 싱싱하고 찐득한 삼꽃들이 주는 취기에 비해 ‘그것’의 취기는 꽤나 소박했고 오대산은 왠지 그게 속상하여 오히려 자랑하고 얘기하고 싶었다.

한한연이 어떤 공포 속에서 이것을 키우고 즐기는지. 그럼에도 이것과 함께한 계곡에서의 물놀이 추억이나 캠핑에서의 연기 같은 추억이 얼마나 각별하고 소중한지.

그렇지만 영어를 통해 얘기하기엔 너무 복잡하다고 오대산은 생각했다. 말할 수 없었다. 참나무 그라인더와 조인트 페이퍼와 여러 삼꽃을 사서 레지던스로 돌아올 뿐이었다.

“고마워. 정말 즐거웠어.” ‘그것’과 한국의 상황이 상기시킨 석연찮은 찝찝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오대산에겐 행복한 나날이 남아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조인트를 피우고 점심 먹으려고 봉으로도 피우고 점심을 먹었으니까 디저트로 브라우니도 먹고 낮잠까지 잤고 밤이었다.

음악을 만들거나 시도 써보려고 켜둔 화면에서 웃긴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전자담배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즐기고 있는데 영상전화가 걸려왔다. 남산이었다. 

 

“이야아! 대산아. 반가워.”

“뭐야, 너희 거기 아침 아니야? 뭔데.”

늦은 밤의 오대산과 밤을 꼴딱 피우고 아침까지 피우는 중인 남산과 은행이 화면을 통해 서로를 마주하고 연기를 뿜으며 깔깔거렸다.

세 사람 다 새빨갛게 늘어진 눈빛으로 그들이 지금 만취했다는 사실을 즐거워하고 반가워했지만 오대산의 감정은 남산이나 은행의 것보다는 얕고 단순했다.

 

“우리 밤새 피웠어.”

“왜? 오늘 일 안 나가?”

“아프다고 하려고. 우리 진짜 아파. 아파서 밤새 피우는 거야.” 은행이 렌즈를 돌려 절반쯤 비었지만 여전히 든든하고 거대한 유리병을 비추었다. “우리 이거 다 피우기로 했어.”

“세상에. 뭐야? 그냥 광란의 파티 같은 거야? 다른 애들은?”

“파티? 파티는 아니야. 다른 애들? 글쎄.” 졸음을 이겨낼 수 없는 몸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깨어 있는 사람처럼 남산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말하다가 갑자기 들썩였다.

괜찮냐고, 왜 그러냐고 고개 숙인 남산의 어깨를 두드리다 다 안다는 듯한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은행도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야, 너희 왜 그래? 이거 무슨 몰래카메라야? 갑자기 뭔데?” 오대산은 화면 너머로 팔을 뻗어 다독일 수 없어서 그런지 어쩔 줄 모르는 손으로 전자담배를 입에 가져가다 아차 싶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아냐. 대산아. 피워. 끄지 마.” 울음 사이사이 헐떡이며 남산이 말했다.

“뭔데. 왜 그러는데? 왜 그러는 건데…….” 왜 우는 줄도 몰랐지만 오대산도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펑펑 나오는 것을 보면 울어야 할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누가 죽었나? 우리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나? 친구? 누가 아픈가? 쟤네가 아프댔지. 우는 병에 걸린 건가? 벌써 전염된 건가? 화면을 사이에 두고 통곡하던 세 사람의 울음이 잦아들어가며 오대산은 히끅거리는 단위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지리산. 잡혀 들어갔다. 마당 대마. 뽑혔다. 그런데. 자신의. 편지가. 포함된. 천하제일 삼꽃. 포스터. PDF. 경찰에게. 있다는 상황까지 알게 되었을 때 오대산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남산과 은행은 오대산을 달래고 달래다 말을 잃고 화면 너머에서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데?” 중얼거리며 우는 오대산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침내 오대산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린 남산이 침착하게 말했다.

“다행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다행인 건 네가 외국에 있다는 거야. 일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안전하다 느껴질 때까지는 거기 있다가 들어오자. 편지에 있는 건 이름이 다지 너라고 특정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통화가 끝나고 오대산은 불안으로 떨리는 몸이 진정되지 않아 말아놓은 조인트를 챙겨 정원을 겸하는 카페테리아 의자에 앉았다.

라이터에서 불을 빼내자 불투명한 조인트 페이퍼가 감싼 잘게 갈린 삼의 꽃조각들이 비쳤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흐릿한 종이 안쪽에서 뒤섞인 초록과 주황의 꽃조각들을 보고 있는데 기척이 느껴졌다. 조인트를 빨며 제이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굿나잇 조인트 피우러 나왔어.” 씩 웃는 제이드의 입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거 너 가질래?” 오대산은 조인트를 내밀었다. “남은 것도 다 줄게.” 제이드는 잠깐 혼란스런 얼굴로 오대산의 안색을 살피다 붉게 부은 두 눈이 취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너 무슨 일 있구나. 그렇지?” 오대산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꺼내기 시작했다.

친구가 대마를 키우다 잡혔다. 그 친구 폰에 자신 또한 대마를 키우고 피운다는 증거가 있다. 그걸 경찰이 갖고 있다. “오, 그거 정말 유감이다.” 제이드는 조인트를 한 모금 빨고 뱉느라 연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날 다 줄 필요는 없잖아. 여긴 너한테 외국이고.” 제이드는 불안에 압도당해 오히려 무감하게 굳은 오대산의 얼굴이 의아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한국에서 대마초를 피우기만 해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거 알아?”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서서히 멈추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몰랐어. 정말?” 오대산은 가슴에서 시고 퍽퍽한 열이 치밀어 올라 목에 말도 못 되는 온갖 영어 문장으로 걸리는 통증을 느꼈다.

“키우는 건 처벌이 더 심해. 네가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가 암스테르담에서 조인트를 하나, 아니 한 모금이라도 마신 것을 한국 사람들이 알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온갖 뉴스를 오르내리며 잘못했다고 반복해서 빌빌 빌고 기약 없이 일을 관둬야 할 걸.”

아주 잠깐의 의미심장하고 불편한 침묵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제이드의 웃음을 조금도 틀어막지 못하고 와해됐다.

제이드는 함께 웃지 않고 여전히 굳은 오대산의 표정을 살피며 웃음기를 차츰 줄여나갔다. 제이드는 길 잃은 할머니 같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농담 아니었어?” 오대산은 쥐고 있던 조인트를 산산이 찢어 풀밭에 버리고 방문을 닫고 이불로 두 귀를 덮고 눈을 감았다.

 

 

벌의 파괴

 

지리산이 잡혔다. 비둘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벌은 오대산의 집으로 향했다.

시골 밤이라 어두운 건 당연했지만 평소보다도 더 어두웠다.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동차가 어둠 너머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과 부딪치거나 아니면 그대로 어둠에 짓눌려 공처럼 구겨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수도 없이 오간 애인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유치장의 밤을 견디고 있을 지리산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렸지만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들떠 있을 짝꿍의 행복한 얼굴이 떠오르면 마음이 저며지는 것 같았다.

벌은 오대산의 집으로 들어가 부산히 돌아다니며 짐 가방 두 개를 끌고 나왔다. 가방 하나에는 파이프, 봉, 대마 서적, 베이포라이저나 네뷸라이저 등 다양한 훈증기, 재배 전구, 텐트 등의 사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다른 가방에는 보통 식당에서 배추김치나 깍두기를 담는데 쓰는 스테인리스 반찬통이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그 안엔 삼꽃이 그득그득 눌려있었다.

벌은 가방 하나는 트렁크에 싣고 다른 하나는 오대산 집 뒤편의 야트막한 흙 언덕으로 끌고 올라갔다. 가방을 쥐고 있던 오른팔이 고장 난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다가 아파왔다.

랜턴을 든 손과 바꾸며 이럴 게 아니라 랜턴을 매달 수 있는 안전모를 써야했다고 생각하며 벌은 기름처럼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한동안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곤 반찬통의 잠금을 풀고 개봉하여 이 나무 아래나 저 나무 아래에 탐스러운 삼꽃봉오리 더미를 호미로 저미며 파묻었다.

구슬땀을 흘리다 하나의 반찬통만 남았을 때 사위가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며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벌은 생각했다. 이럴 게 아니라 통째로 묻을걸. 보자기로 싸서. 아니, 짐 가방에 넣은 채로. 아이스박스나. 나중에 꺼내서 먹을지도 모르는데. 김장처럼. 내가 생각이 짧았네.

벌은 마지막으로 남은 반찬통이라도 온전히 묻기로 하고 가까운 가문비나무 곁에 묻었다.

가장 못난 꽃봉오리나 부스러기만 채운 반찬통을 묻고 돌아섰을 때 세상은 햇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맞아. 세상의 절반은 언제나 이런 빛 속에 있구나. 그러니 삶의 절반은 빛 속에서 이루어지겠구나.

벌은 온갖 나무가 꽂힌 산봉우리들이 잘 말린 삼의 꽃봉오리들처럼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쪽 세상을 향해 벌은 숨을 들이쉬다 눈물인지 땀인지가 자꾸 흘러내려서 닦아내고 언덕을 내려가기로 했다.

일단 집에 가서 씻고 자자. 운전 중에 오대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얘기 들었어? 응. 지금 다 정리하고 돌아가는 길이야. 알지. 뭘. 당연하지.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내 집이나 다름없잖아. 응. 묻었어. 응. 치웠어. 응. 버려야지. 알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응 괜찮아. 아니. 이제 집에 가서 간단히 먹고 씻고 좀 자려고. 응. 그래야지. 응. 이해해.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있잖아. 어쨌든 우리의 삶은 빛 속에서 펼쳐지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루의 절반은 낮이니까…… 아니야. 위로가 될까 싶어서. 응. 알아. 거긴 밤이겠지. 맞아. 너무 걱정하지 마. 자고 일어나면 한결 나을 거야. 눈을 뜨면. 해가 떠서.

 

 

비둘의 파괴

 

지리산의 컴퓨터 하드가 냄비 안에서 끓고 있었다. 

비둘은 지쳐 있었다. 떨 생각이 나서

며칠 전 지리산의 포대를 묻었던 야산으로 가

땅을 팠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 데를 팠는데 없었다. 여기도 아닌가?

딴 데를 파는데 웬 형광 등산객이 물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비둘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생각했다. 땀과 흙투성이가 되어

침대로 돌아와 고개를 묻고

비둘은 라니에게 전화했다. 정리해.

비둘은 거북에게 전화했다. 힘겹겠지만

비둘은 삽살에게 전화했다. 정리해. 어쩔 수 없어

비둘은 전화했다. 대마를 뽑고 묻으라고. 이 세상에서

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정리하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으면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정리되고 싶었다. 피곤해서

맥주를 마시고 잤다. 전화하고

또 맥주를 마시고 잤다. 방에서

캔이 쌓여갔다.

 

 

부엉의 파괴

 

어차피 아이들이 잘 시간이라 재배등은 꺼져있었지만 부엉은 멀티탭의 전원을 껐다.

한창 먹고 클 때인 성장기의 대마 8주가 어둠 속에서 자고 있었다. 가위로 하나씩 딸 때마다 부엉은 눈을 감고 속으로 말했다. ‘얘들아. 눈 감아.’

 

 

구리의 파괴

 

맥북을 부수고 생각했어. 이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폰을 부수고 생각했어. 이게 이럴 일인가?

또 뭐가 있나 집안을 엉망으로 들쑤시고 그 가운데 앉아 생각했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

 

 

오소의 파괴

 

뉴델리의 두르가는 몇 년 전 다람살라에서 만난 한국 친구가 보낸 택배를 열었다. 동봉된 편지를 뜯어 읽었다.

 

 

안녕. 두르가.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이렇게 갑자기 택배를 보내는 이유는 잠깐 내 외장 하드를 맡아주었으면 해서.

이상한 부탁이지만 부탁할게. 백업을 해준다면 포맷하고 가져도 돼.

안에 재밌는 거 많아. 보고 싶으면 봐도 돼. 혼자서만 봐.

절대 한국인이 보면 안 돼.

부탁할게.

 

 

범의 파괴

 

“언니. 얘기 들었지?”

오대산에게서 전화가 온 건 잘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식은 녹차에 말아 깍두기를 곁들여 해치운 다음이었다.

다 안다고. 벌이랑 통화했다고. 지난밤에 너 집 정리한다길래 도와주겠다니까 혼자서가 더 편하다 하더라고.

범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암스테르담에 가서 풀이 죽다 못해 이미 죽은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 동생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평소 동생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고 누가 자매 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고 괜히 관습적인 말을 꺼내면 참 좋은 정도는 아니라고 정정하는 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목소리가 쫄딱 젖어 갈라지지 않도록 일부러 밝은 높이로 끌어올려야만 했다.

 

“엄마한테 말했어? 말 안 했지?” 어떻게 참 좋아하겠는가. 말을 잘도 했겠는가? 범은 속이 타서 고춧가루가 가라앉은 찻물을 들이켰다. 

범은 한한연 모임에 꼬박꼬박은 아니어도 자주 참석하며 가끔 대마를 즐기는 안전제일형 사용자였다.

평소 동생에게 아무데서나 막 피우고 다니면 안 된다, 그렇게 많이 키우고 주변에 나눠주면 안 된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데 너는 그냥 꼬리다, 그러다 밟히는 거다, 퍼붓던 잔소리들이 떠오르자 열이 올라 어지러웠다.

범은 담배를 빼어 물고 창가에 섰다.

 

“언니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 무슨 정리? 벌이 다 했다고 하지 않았냐. 나보고 지금 강원도 첩첩산중까지 가라는 거냐. 내일 가면 안 되냐. 벌이 일어나면 가라 하면 되지 않느냐. 알았다. 가겠다. 울지 마라. 범은 내일 당장의 출근이 마음에 걸려 오전 반차라도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에 잠긴 채로 자신과 차를 서울 바깥으로 빼냈다.

다들 어디로 그렇게 가시는지 빠르게 다니라고 산을 밀고 건설한 도로 위로 영문을 알 수 없이 많은 차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다 하나 둘 걷히더니

어느새 범은 수풀 사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강이 펼쳐지기도 했고 비닐하우스와 밭, 넉넉한 간격의 민가들도 지나갔다.

하늘이 보이네. 범은 생각했다. 세상으로 나온 것 같아. 창문을 내려 숨을 쉬었다.

담배를 몇 개 피우는 동안 해는 빌딩 너머로 넘어갈 때나 폰이나 랩탑의 화면을 보는 사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넘어갈 때와는 달리 불타는 구름 떼를 이끌고 산 너머로 넘어갔다.

‘해 질 녘과 땅거미를 보았다.’ 범은 그림일기를 쓴다면 오늘은 지금의 세상을 그리는 것만으로 충분하겠다고 느꼈다.

‘이상한 말이지만 노을 속에서 동생에게 고마워졌다.’ 범은 음악을 틀어 덧붙인 문장을 원고지에서 지워냈다.

범은 오랜만에 느끼는 어둠과 고요를 개구리처럼 피부로 느끼며 오대산의 집으로 들어갔다. 과연 대마는 물론이고 가구도 모두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벌은 참 좋은 애지. 끄덕이며 오대산에게 전화했다.

 

“도착했어?”

“응. 이제 내가 여기 왔어야했던 이유를 말해줄래?”

“김치냉장고 가장 밑 칸을 열어봐.” 

김치냉장고? 범은 갸웃거렸다. “열었어.”

“가장 안쪽에 김치통 두 통 있을 거야. 꺼내서 열어봐.”

범은 뚜껑을 열고 열었다고 말하기에 앞서 두통을 느꼈다.

이 미친 것아. 새빨간 국물에 고춧가루가 잔뜩 묻은 대마 잎더미가 가득 잠겨있었다.

심지어 다른 한 통에는 꽃송이가 아주 많이 섞여있었다. “그래. 봤다. 버리라고?”

 

“고마워, 언니. 혹시 궁금하면 맛 좀 볼래? 쌀밥에 싸 먹어봐. 나도 못 먹어봤어.”

“됐거든.” 얼른 치우게 범은 두 통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싶었지만 무거웠다.

끙끙거리며 통 하나를 집 뒤편의 흙 언덕으로 나르고 다시 내려와 다른 한 통은 상스러운 욕을 속삭이며 옮긴 뒤에 범은 흙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

별이다. 세상엔 별이 많구나.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새빨간 국물과 건더기를 붓다가 범은 누가 볼까 심히 걱정되었다.

야심한 시각에 야산에서 너무 축축하고 빨간 것을 파묻고 있었다.

김치 두 통을 다 묻고 나니 김칫국물과 흙먼지와 땀 냄새가 온몸에서 지저분했다.

샤워를 하고 제일 좋아 보이는 동생 옷만 골라서 입으니 잠을 자도 한참 전에 자야 할 시간이었다. 반차 내야겠네.

 

범은 시동을 걸기 전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중얼거렸다. “떨 한 대 피우면 딱 좋을 텐데.”

 

 

지리산의 파괴

 

이감을 앞둔 밤, 창살의 안쪽에서 지리산은 생각했다.

나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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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3. 모두 불태워라! 이튿날 부엉은 서초역 지하철 출구 주변에서 남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원도 있고 서울중앙지검도 있고 변호사 사무실도 많고 거대한 교회도 있어서 담배 피울 일이 많은 동네일 것 같은데 흡연 구역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들어가 후미진 곳을 찾아 파고들어가도 담이든 벽이든 보이는 자리마다 금연구역 딱지를 붙여놓아서 어디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불이라도 붙이면 금방 경찰이든 형광 조끼 단속원이든 와서 과태료 딱지라도 끊을 것만 같은 분위기의 동네였다. 부엉은 두 눈을 끔뻑였다. 침이 따갑게 넘어가도록 피곤했고 절반의 정신은 깨어 있기를 진작 포기하고 그저 다른 절반의 정신에 의해 붙들려 있었다. 정신 차리자. 심각한 상황이잖아. 부엉은 어제 저녁만 해도 접견을 위해 지리산이 수감된 어디 남도 경찰서에 있었다. 지리산의 수확 기념 파티가 있는 날이라서 선물 한 보따리 챙겨 지리산네 대문을 넘었는데 엉망진창으로 초토화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당의 대마가 있던 자리는 파헤쳐져 있어 부엉와 비둘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비둘이 남산과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에게 자신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으니 가까운 지인에게라도 소식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경찰서의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리산은 말했다. 자신은 체포되었고 오늘 훈방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면회를 와주겠냐는 부탁과 영문을 알 수 없는...
김도 2026.02.26 Votes 2 Views 408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2. 수확의 날 누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계속 두드리길래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 꿈에서 나와 보니 꿈밖에서도 누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네, 나가요.” 지리산이 몸을 일으켜 눈곱을 떼며 쾅쾅거리는 문에 가까워지는 아침으로부터 이틀 전의 일이었다. 남산과 구리와 오소와 부엉은 오대산의 집에 모여 있었다. 내일이면 오대산이 바다 건너로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모여서 대마를 피우며 환송의 밤을 보내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편 오대산은 사는 곳도 좋고 짝꿍 벌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배웅해주는 마음도 고마웠지만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해외 레지던스 지원 사업 대상 발표 날부터 달력에 칸칸이 X를 그어가며 하루하루를 해치워왔기 때문이었다. 가보고 싶은 커피숍도 많았고, 맛보고 싶은 종자나 호사스러운 대마, 예를 들어 커다란 조인트에 익스트랙트를 바르고 키프를 뿌린 것처럼 한국에선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을 피워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적대적이거나 불안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영상과 음악을 만들며 대마초와 함께하는 일상을 누려보고 싶었다. 오대산의 속내가 어떠했든 간에 퇴근을 했다든지, 막 일어났다든지, 피자를 시켰는데 큰 것이 왔다든지 어느 구실이든 일단 모여서 대마 연기로 기념하는 친구들에게 오대산의 출국은 물론 누락되어서는 안 될 기념의 이유였다. 그들은 간혹 짖는 먼 개와 먼 새와 실내의 자욱한 연기 가운데 앉아 어떤...
김도 2026.02.19 Votes 1 Views 474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1. 향수병 “9, 8, 7, 6, 5, 4… 2… 0! 마침내 4시 20분이 되었습니다. 자리해주신 ‘한반도 한약 연구회’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제1회 <천하제일 삼꽃 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을 좀 살만하게 느끼기 위해서, 병을 치료하고 조절하기 위해서, 친구가 좋은 거라고 주길래 피워봤는데 진짜 좋은 거라서, 좋은 게 좋은 거라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대마초를 피우고 키워왔지만 대마초를 사랑한다는 점에선 모두 같은 마음이라 봐도 좋을 겁니다.그렇기 때문에 먼 걸음을 하여 오늘 이 자리에 모였겠지요.” 편지를 읽는 친구는 취기 때문인지, 치미는 감동 때문인지, 둘 다 때문인지 붉은 눈시울로 친구들의 얼굴을 훑었다. “<천하제일 삼꽃 대회>는 단순히 높은 THC 함량에 기반한 강력한 취기를 기준으로 경쟁하여 우수한 약성의 대마초를 선별하기 위한 대회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진심과 정성을 쏟아가며 만나고, 성장을 지켜보고, 거두어야했던 친구와의 나날을 회원들과 연기의 형태로 나누는 의식입니다. 부디 오늘의 경험이 ‘한반도 한약 연구회’의 대마와 함께하는 행복하고 안전한 인생과 살만한 세상을 가꿔나가는데 필요한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 읽은 편지를 접어 가방에 넣은 친구는 휴대용 프로젝터를 꺼내어 벽에 비추었다. “아, 쟤 또 뭐 준비했네.” 아담한 시골집에 그득 모인 이른바 ‘한한연’ 친구들의 기대어린 소란은 조그만 프로젝터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전주에 귀를 기울이며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영상이...
김도 2026.02.12 Votes 3 Views 540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주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분명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는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 또한 자신 역시 그저 아는 사이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나로선 알 길이 없는 그 친구도 이건 그냥 들은 이야기니까 너무 진지하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심각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당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러기 마련이듯이 이 친구와 그 친구 이야기가 세부적으로 차이가 좀 있던데 어느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가려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와 나는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로 얽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친구가 이 재밌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밤에 삼의 꽃을 그라인더로 갈아 조인트를 말아 피우거나 파이프나 워터봉에 담아 불을 붙이고 들이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대마가 어떤 식물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오이나 김치 같은 건 알아도 대마와 같은 식물이 이 별에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이 글의 갈래는 소설이며 따라서 두말할 것도 없이 지어낸 이야기고 나는 화자로서 만들어지는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글이 한국어로 쓰이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마초를 피우기만 해도 뉴스에 나올 법한 종류의...
김도 2026.02.05 Votes 2 Views 692
대마초를 이야기하는 순간,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이미지’부터 본다. 대마초와 프레임 대마의 악마화를 넘어서, 그 핵심 내용을 말하려 하면, 그 시도는 곧바로 ‘미화’라는 비난으로 돌아온다.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말조차 의심받고, "대마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조차 꺼내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말해야 할 내용을 꺼내기 전부터, 그 말이 어떤 식으로 오해받을지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건 단순한 오해의 문제가 아니다. ‘대마는 위험하다’는 전제가 너무 오래, 너무 깊게 각인돼 왔기 때문이다. 그 각인은 이제 실상을 왜곡하는 수준을 넘어, 그 주제 자체를 ‘꺼내서는 안 될 이야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점점 입을 닫게 되었고, 침묵당한 목소리는 곧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는 건 언제나 두려움, 낙인, 단정적인 혐오다.   우리는 허구의 도덕성이 진실보다 앞서는 사회에 살아왔고, 그 기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대마초를 창의적 사고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경험을 언급하는 순간, “대마를 미화한다”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온 내면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엔 관심이 없고, 단지 “대마를 했다는 사실”에만 매달린다. 지금 우리는, 어떤 물질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말한 사람마저 왜곡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기호용 대마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단지 시각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일 뿐인데, 누군가는 그것을 “모두 함께...
칼럼 네츄럴 레볼루션 2025.04.22 Votes 1 Views 1983
캐나다의 6년 결과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대마초, 범죄인가 선택인가 2018년, 캐나다는 G7 국가 중 최초로 대마초를 전면 합법화했다. 그 결정은 단지 법을 푸는 조치가 아니었다. 국가는 선언했다.   “더 이상 범죄조직이 대마 시장을 지배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대마 소비를 국가의 책임 아래 둬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려했다.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 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의 선택은 실패한 실험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모범 사례로 남았다. 최근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는, 이 변화가 단지 ‘허용’이 아니라 공공성과 현실을 조율하는 전환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왜 아직도 대마를 죄악으로만 규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고 있는가?     단속이 가리던 현실, 제도화가 드러냈다 이번 연구는 2001년부터 2023년까지 캐나다 국민의 가계 지출 데이터를 분석해 대마 시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합법화 직전, 전체 대마 소비의 약 88%는 불법 유통망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2023년에는 그 비중이 24.3%로 줄어들고, 합법 유통은 전체의 72.2%를 차지하게 되었다. 같은 기간 시장 전체 규모는 약 75% 성장했다.   겉으로는 사용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대마는 원래부터 소비되고 있었고 다만 불법이라는 이유로 음지에 숨어 있었으며 이제는 사회가 그 현실을 인정하고, 공식적 루트를 통해 다루고 있다는 것...
칼럼 네츄럴 레볼루션 2025.04.16 Votes 2 Views 1685
“그리고 양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했습니다. 이 철학은 개인의 기능이 정보를 전달하고 정보를 얻는 데 있다고 제시합니다. 당신은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장(field) 속에 있을 때만 진정으로 존재합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속한 현실을 창조합니다.” ― 티모시 리어리 (Timothy Leary)   티모시 리어리 (Timothy Leary) 이 문장은 1960년대의 싸이키델릭(psychedelic) 문화와 의식 확장의 시대를 상징하는 강렬한 선언이었다. 당시 사회는 베트남 전쟁, 흑인 인권 운동, 여성 해방 운동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고, 젊은 세대는 기존의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티모시 리어리는 단순한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 내면의 탐구와 의식의 확장을 통해 더 깊은 차원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은 인간이 정보와 교류 속에서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더 높은 차원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개념에 기반했다. 이 철학은 싸이키델릭 문화와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의 중심이 되었고, 1970년대 후반 실리콘 밸리에서 창의적 사고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티모시 리어리, 새로운 시각을 탐구하다 1920년 10월 22일,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티모시 리어리는 어린 시절부터 규칙과 권위에 저항하는 성향을 보였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엄격한 군사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교했다. 그 후 UC 버클리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리어리는 인간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연구하며 학계에서 주목받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기존 심리학의 경계를 넘어 내면의 깊은 의식을...
칼럼 네츄럴 레볼루션 2025.02.12 Votes 0 Views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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