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리안 하이웨이』 0. 주의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주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분명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는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 또한 자신 역시 그저 아는 사이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나로선 알 길이 없는 그 친구도 이건 그냥 들은 이야기니까 너무 진지하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심각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당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러기 마련이듯이 이 친구와 그 친구 이야기가 세부적으로 차이가 좀 있던데 어느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가려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와 나는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로 얽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친구가 이 재밌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밤에 삼의 꽃을 그라인더로 갈아 조인트를 말아 피우거나 파이프나 워터봉에 담아 불을 붙이고 들이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대마가 어떤 식물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오이나 김치 같은 건 알아도 대마와 같은 식물이 이 별에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이 글의 갈래는 소설이며 따라서 두말할 것도 없이 지어낸 이야기고 나는 화자로서 만들어지는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글이 한국어로 쓰이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마초를 피우기만 해도 뉴스에 나올 법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어야 할 만큼 소란스러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한국 고유의 과민한 문화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방해가 될까 우려되다보니 작가는 화자인 나의 목소리를 빌려 소설과 현실은 분간할 필요가 있다는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는 조언을 구태여 구구절절 독자 여러분께 남기는 중인 것 같다.
그리고 기왕 지저분하게 설명부터 줄줄 흘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김에 독자 여러분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것 같다. 그게 뭐냐면
어둠. 빛이 없어서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함이 아니라
빛이란 것이 있었던 적이 없는 이유로
어둠조차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깜깜함. 끝도 없이 넓거나
끝만 남은 비좁은 곳에서 누가 잠에서 깼다. 기지개를 켜며 팔과 다리가 쫙 펼쳐질 때
세상도 알껍데기처럼 쪼개졌고 산산이
빛이 쏟아졌다.
어디 따로 갈 데 없는 빛과 어둠이 셰이크처럼 뒤섞이는 가운데서 깨어난 자는 인간이 보통 일어나면 우선 해결하는 용무를 봤다.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불과 불로 된 물과 돌과 흙이 땅을 이루고 밀려나가며 여러 산을 쌓았다. 그 위로 퍼붓는 오줌줄기는 산과 땅을 나누고 휘저으며 강으로 흘러 바다로 고였다.
도대체 뭘 먹고 얼마나 오래 잤는지는 몰라도 지난 세상을 몽땅 삼키고 영원토록 자다가 문득 깼다고 봐야 마땅하도록 온 세상을 배설한 그 자는 거대했다.
어디서는 게, 가이아라 부르고 우주 과학적으로는 흙(The Earth)이라 이르며 어디서나 어머니 자연으로 모시는 그녀를
이 동네 사람들은 마고(麻姑)라고 불렀다.
마고의 눈에는 인간이든 여느 동물이나 식물이든
흙에서 일어나 생긴 대로 잠깐 움직이다가
이내 풀썩 쓰러져 흙에 다시 섞이는 귀여운 춤으로 보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디선 노고할미, 개양할미, 또 어디선 설문대할망으로 불려가며
마고할미는 여러 재밌는 이야기를 쌓아왔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설문대할망은 제주도 사람들과 다소 불공정한 거래를 한다.
속옷을 지어주면 육지와 통하는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것이 그 내용인데 백록담이 무릎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는 마고에게 제주도와 한반도를 잇는 다리를 놓는 건 일종의 공기놀이겠지만 마고의 속옷을 짜는 일은 인간에겐 가혹한 과업이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에겐 명주 100통이 필요했지만 모으고 모은 게 99통에서 그치고 말았다.
마고는 다리를 짓다 말아버린다. 1통이 50필이니 5000명의 옷을 짤 수준의 명주가 필요했던 셈이다.
그러면 마고는 속옷 말고 옷 한 벌 지어 입으려면 얼마만큼의 옷감이 필요한 걸까? 아무래도 연약한 부위다보니 속옷은 명주실로 짓는다 쳐도 겉옷과 외투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마고의 이름이 마고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마고의 마는 삼 마(麻)자니까
직접 찾아가 살펴보거나 물어볼 필요도 없이
마고는 대마의 줄기로 짜는 삼베옷을 입을 것이다.
고조선 시대의 삼베옷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동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대마를 키워왔다. 대모신의 이름이 삼이 될 만큼
삼에 감사하고 삼을 좋아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옷을 짓기 좋게 줄기가 질기고 생명력이 강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시대의 어느 지방이든 간에
사람은 식물의 꽃과 열매를 사용하거나 적어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게 돼있으니까.
꽃이야말로 그 식물의 힘이 집약되는 결정체이기에 열매와 씨는 꽃이 진 자리에 맺힌다.
삼도 마찬가지다. 삼의 꽃, 대마초를 사용하지 않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마고의 옷 한 벌을 다 지을 정도로 뻗어나가는 삼밭의 꽃향기와
거기서 연기를 마시고 뱉는 한반도 사람들을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물론 요즘은 그런 상상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권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고는 삼과 운명을 함께해왔다.
오랜 토착신앙으로서 뿌리내리고 있던 마고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갈 무렵
전국에선 대마가 뿌리 뽑히고 있었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 아래 금지되기 전까지
삼은 법적으로 관리되어야 하거나,
걱정해야 하거나,
무서워해야 하는 종류의 식물로서 고려된 적이 없었지만
범죄가 된 이후로 인간의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독초로서 교육되었다.
한반도 남쪽 지역을 구성하는 수천의 초록색 중
대마의 초록만이 집요하게 뽑혀 불살라졌다. 그러는 동안
공교롭게도 사람들은 환웅과 단군과 웅녀는 알아도 마고는 잘 모르게 되었다.
결국 대마초를 피우기라도 하면 눈총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감옥에 갇히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평범한 인식이 되고 말았고
미국의 정치적인 입장 탓에 이루어졌던 세계적인 대마 불법화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불합리한 처사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2020년, 국제연합(UN)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따라 대마초의 규제 등급을 기존의 규제 약물 리스트에서 하향 조정했지만
2022년, 이태원에선 인파 통솔에는 무관심한 40여 명의 사복 경찰이 대마초 사용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람에 갇힌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 소설은 이 시기쯤을 배경으로 삼는다.
다음 화: 『코리안 하이웨이』 1. 향수병
전체 연재 목록은 칼럼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Number |
Title |
등록일 |
바로가기 |
| 28 |
영화 ‘풀’ 관객 추진단 “대마를 석방하라”···대마초 비범죄화 요구 선언문 발표
2025.04.26
|
2025.04.26 | |
| 27 |
양지 부상 '대마'…프랑스, 의료용 대마 합법화 추진
2025.03.24
|
2025.03.24 | |
| 26 |
뉴욕주, 합법 마리화나 판매로 세수 1억6180만불 늘어
2025.01.29
|
2025.01.29 | |
| 25 |
"국내서 불법인데"... '이것' 女오르가즘 높여 성기능 치료?
2024.07.03
|
2024.07.03 | |
| 24 |
독일식 '대마초 합법화' …우린 안되나요?
2024.04.20
|
2024.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