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리안 하이웨이』 5. 스승의 은혜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5. 스승의 은혜
“뭐가 이상한데?”
물어봐 달라는 듯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에요.”라고 와인을 홀짝이며 주워섬기는 백변에게 선심 쓰듯이 이변이 물었다.
“몰라요. 다 이상해요.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일이란 게 그렇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그런 사람들보다 이상해요.”
“제일 이상한 게 뭔데. 말해봐.”
백변은 알코올로 인해 풀린 눈으로 와인바 벽면의 있는 줄도 몰랐던 옛날 영화 포스터가 들어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알코올로 인해 끊임없이 나 자신의 재밌거나 흥미로운 점을 드러내고 싶어 자꾸 들썩이는 입을 열었다. “자기들끼리 되게 아껴요.”
“그게 뭐가 이상한데? 좋은 거잖아.”
“이변. 마약 케이스 맡아본 적 있잖아요. 보통 향정이든 대마든 누가 걸리면 어울리던 사람들끼리 파탄 나잖아요. 누가 누구 불고. 서로 의심하고. 무서워하고. 미워하고. 원한 관계도 드러나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안 그래요.”
“아. 그건 흥미로운 점이네.”
백변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 그 사람들 손도 잡았잖아요. 사무실에서 회의 끝나니까 갑자기 누가 다들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의뢰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자는 거예요. 나는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변호사 선생님도 잡으시죠, 그러는 거예요. 정중히 사양했는데 자꾸 같이 하자고 해서 잡았다니까요.”
이변은 마구 웃었다. 헐떡이며 말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백변은 여전히 영화 포스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알고 싶다니까요. 어쩌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되었는지. 그래서 어제는 대마초 공부까지 했어요.”
“너 설마 피웠어?”
“아뇨. 공부했다고요.”
“대마초에 공부할 게 뭐가 있어? 마약이잖아.”
“맡은 일인데 최선을 다 해야죠. 그리고 마냥 그런 건 아니에요. 공부할 거리가 있어요.”
“그러세요? 뭘 공부했는데?”
백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주문한 책과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를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합법화 흐름에 큰 영향을 준 CNN의 유명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대마에는 여러 의학적 효과가 있더라…….
삼촌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는 물음에 의사 삼촌은 눈빛을 흐리고 초점을 지난 일에 맞추었다. “암으로 힘들어하는 환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대마를 주었습니다.” 병으로 인한 것이든 화학적 치료로 인한 것이든 통증이나 식욕, 수면, 구역질 등의 부작용이나 심지어는 근본적인 치료 자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그 사람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는 자신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환자는 대마를 잘 사용했지만 환자가 보이는 반응이나 차도와는 관계없이 대마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주변인이 신고를 했고, 어느 날 경찰이 문을 두드리고 수갑을 채웠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지리산은 철문을 두드리는 그날 아침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의사 삼촌은 자신의 공황을 치료하기 위해 대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효험을 경험하고 전무하다시피 무관심한 국내 대마 연구와는 달리 비교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서구권의 영문 저널이나 논문 따위를 찾아 읽어서 대마의 의학적 가치를 공부했는데 THC, CBD, CBG, 테르펜 등 대마의 성분을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라 이르며 인체에는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용체계가 있는데 이를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Endo-Cannabinoid System)이라 이르고, 인체의 항상성 유지에 기여하며…….
지리산은 빅파이 책상을 다리에 얹어 수업 내용을 필기 중이었는데 교도관이 면회자가 있다고 했다. 변호사일까 싶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접견실에 갔을 때 투명한 차단막 건너편엔 벌이 있었다.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리산은 크게 당황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부터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만들고 취한 나무늘보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자리에 앉아 평화로운 미소를 지어내고 수화기를 귀에 붙였다.
“웬일이야? 이런 데를 다 오고?” 무슨 일이든 일어난 거야. 좋은 일이 아닐 거야. 그런 불안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물론 경찰로서는 벌이 오대산의 연인인지 알아낼 길도 없고 어쩌면 딱히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지리산이 면회장에서 누구와 만나든 이를 몰래 살펴볼 필요를 느끼지도 않겠지만 지리산의 정신은 지난 재판 이후 떨쳐내기 어려운 불안과 공포 속에서 쇠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지리산 이외에 유일하게 특정 가능하면서도 한한연의 중요한 회원으로 추정되는 오대산의 연인인 벌이 자신을 만나러 오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종류의 사건이었다.
때문에 지리산은 벌이 대답하기 전까지의 잠깐 사이 온갖 끔찍한 경우의 시나리오를 쓰고 지웠다.
오대산의 정체가 밝혀졌나? 경찰이 암스테르담 경찰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나? 인터폴이 출동했나? 남산이 잡혔나? 오소? 비둘? 은행? 라니? 이제 우린 다 끝난 거야?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대마 한 주 키웠다고 교도소에 가둔 사람의 공범을 잡기 위해 국제 수사를 요청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웬일이라니. 친구 얼굴 보러 왔지. 잘 지내나.”
지리산은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잘 지낸다고 말하기 어려운 곳에서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적어도 비관과 낙담 속에서 죽어가고 있지 않았다. 창살 밖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게 죽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것을 보통은 잘 지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만 지리산은 오대산이 잘 지내고 있는지, 오대산이 잘 지내고 있어서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냥 재미로 지어낸 이름이라고 둘러댄 오대산을 호명하며 안부를 물을 수가 없는 노릇이어서 지리산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물어물거리다가 문득 오대산과 벌이 서로를 어떤 애칭으로 부르곤 하는지를 기억해냈다.
“알콩이는 잘 지내?”
“알콩이는 난데?”
“그렇구나. 그렇다면 달콩이는 잘 지내고?” 쓸데없이 정확한 벌에게 지리산은 침착하게 물었다.
“응. 달콩이 잘 지내지. 지금은 독립군이 몸을 숨겼던 곳에 숨어있기로 했어.” 이게 갑자기 웬 강점기 얘기란 말인가.
슬픔과 불안으로 친구의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염려로 떨리는 지리산의 눈빛을 의식했는지 벌은 안심하라는 듯 한쪽 눈을 세 번 정도 찡긋거렸다.
벌은 미처 지리산이 갇혀 지내느라 암호를 알아듣지 못해서 윙크를 신경과민으로 인한 갑작스런 경련으로 오해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리산이 수감되고 한한연의 운명이 고작 고장 난 스마트폰의 데이터에 달려 있다는 한편으론 보잘것없고 또 한편으론 끔찍하게 위태로운 현실과 마주한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카오톡이니 인스타그램이니 자꾸 데이터를 나누도록 정신을 흥분시키고 부추기는 서비스들로부터 탈퇴하기 시작했다.
정말 나누어야 할 대화가 있으면 전화를 이용했고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모른다며 그마저도 도청을 피하기 위해 암호를 썼다.
기러기는 꽃밭에 둘러싸여서도 마음이 아파 꿀을 빨지 못하고 있어.
사루비아는 황급히 뿌리를 거두다가 그 땅에 남은 씨를 흘리고 왔대. 가까운 새가 먹거나 묻자.
해변에 비가 내리네.
그건 무슨 뜻이야?
해변에 비가 내린다고, 와 같은 의사소통의 사소한 불편함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친구들은 작은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보다 언제나 화면의 바깥이 흥미로운 게 세상이었고 그들은 세상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필 사진이나 소셜서비스에 게시한 이미지와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살피지 않으니까 세상이 자신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살피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면을 보지 않으면 보이는 화면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조화에선지 그들의 하루는 한결 고요해졌다. 그것은 한한연 친구들에게 가장 간절한 필요였다.
지리산의 폰이 순순히 열려버려서 닥쳐올 미래나 그들이 바로잡을 수 있었거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실수를 남겼을지도 모르는 과거가 입을 모아 시끄럽게 지껄이는 것을 한 순간도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끊임없이 진동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을 논의하거나 형량과 판례를 조사하거나 대마초와 관련된 뉴스나 유튜브 비디오 댓글 따위에서 드러나는 대마를 향한 대중의 평범한 적개심에 무력하게 끌려 다니다가 뮤직비디오든 쇼핑몰이든 웹툰 따위에 마비되어 온 신경이 곤두서도록 진이 빠져 잠도 못 잘 필요가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그것이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었고 덕분에 가끔 필요에 의해 구리네 화분을 누가 정리해야겠다, 거북의 냉동고 치워줬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같은 내용을 주고받을 때면 경찰, 검찰, 특수첩보기관, 외계 문명, 어느 세력에 의해서든 통화를 도청당하거나 메시지를 해킹당할 가능성이 민망할 정도로 없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암호를 사용함으로써 작지만 위로가 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즐거움은 말하자면 어느새 그들이 습관적으로 공유하는 표현인 “독립운동가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당하게 뿌리 뽑히고 억압받는 대마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비밀조직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은 그들의 우정과 믿음을 강력하게 다졌다.
한한연 친구들은 오히려 잘 익은 삼꽃처럼 끈끈해지고 있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따로 암호체계를 정하여 나누지 않았음에도 선문답적인 질의응답만으로 불편함 없이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리산처럼 격리되고 고립된 친구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지리산이 안위를 궁금해마지 않는 <천하제일 삼꽃대회> 편지의 주인공, 오대산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이 지나고 오대산에겐 갈 곳이 없었고 갈 곳이 있어야만 했다.
첫 번째 재판이 끝난 날에 오대산이 얼마나 오래 떠돌아다녀야 할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메일을 받고(그마저도 암호랍시고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만 보내길래 헛소리하지 말고 분명하게 말하라고 답답한 마음을 꾹꾹 눌러 타이핑한 답장을 보낸 뒤에 받아낸 것이었다) 오대산은 수중의 돈부터 확인했다.
팔자 좋게 서유럽의 호텔이든 게스트 하우스든 기약 없이 뭉개기엔 턱도 없는 수준의 잔고였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몸을 눕힐 곳을 여러 번 살 수 있는 물가의 나라로 멀리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오대산을 재워줄 따듯한 마음씨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좋은 생각 같은 게 있다면 도와달라는 메일을 보낼 때 오대산은 ‘나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를 여러 번 쓰고 지웠다.
답장은 시차가 없는 것처럼 왔다.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좀 모았어. 범이랑 벌이 거의 다 냈지. 넉넉하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디 가게 되면 연락 부탁해.’ 오대산은 언니와 연인을 생각하며 복받쳐 울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처음으로 대마를 피우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마주보기를 피해왔던 지난 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 때 일어나는 슬픔, 행복, 위로받는 기분, 체념이 주는 자유, 녹아내리는 묵은 원망, 그 밖의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갖가지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와 눈물을 게워내다 잠들었던 것 같다.
그때 오대산이 잠에 들 때까지 곁을 지키던 두 중국인이 있었다. 장루이와 천메이린. 두 사람은 중국에서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었고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의 주도, 심라의 어느 짜이 가게 앞에서 만났다.
외국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고향땅을 의식하는 동북아시아 사람들이 그러듯이 두 사람은 각자의 짜이를 마시며 상대의 국적을 짐작해봤다고 했다.
루이는 메이린을 일본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했던가, 메이린은 루이를 한국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했던가, 아니면 그 반대였던가, 아무튼 서로 중국인이라고 생각은 못했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둘 다 눈이 불그스름한 것이 누가 봐도 대마에 취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대마에 관해선 사정이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서 쑥 타는 냄새가 난다고 신고해서 붙잡히는 처량한 대마초 흡연자가 뉴스에 오르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외국에서 대마초를 피우면서 굳이 고향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은 법이다.
여하간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지만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것은 며칠 뒤의 말라나에서였다.
그때 그 사람이잖아! 중국인이잖아! 물론 두 사람이 말라나를 찾은 이유는 같았다. 말라나 크림. 말라나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인도 고대의 전통을 지키는 특별한 마을이다.
주민들은 외부인과 신체적 접촉이 금지되고 인도의 법보다는 말라나의 자치법을 따른다. 폐쇄적인 특징을 보이는 만큼이나 말라나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 온갖 특별함 중에서도 수 세기 동안 자연적인 방식으로 관리된 삼밭에서 전통 그대로의 방법으로 빚는 짜라스, 말라나 크림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다.
말을 탄 농부들이 삼의 꽃으로 두 손을 뻗어 마치 깊이 기도하는 사람이 그러하듯이 꽃을 감싸고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따듯이 비빌 때 손바닥과 손가락의 살갗에 대마초의 수지가 끈끈하게 들러붙는다.
이를 긁어내어 뭉친 향기롭고 끈적한 덩어리를 짜라스라 부르며 어느 지역에서는 해시시라 불러왔다.
해시시(Hashish)는 어쌔신(Assasin)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참전군인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대마초만한 것이 없다는 의학적 사실을 고려할 때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여하간 말라나에서 만들어지는 짜라스를 이른바 말라나 크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만드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그러한 과정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도 지켜지는 삶의 가치 덕분이다.
루이와 메이린은 인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말라나에 가서 말라나 크림을 경험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중국인 스토너(Stoner)였다.
그런 두 사람이 모국어를 통해 서로의 같은 마음을 발견했을 때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불꽃은 치솟아 파이프 위의 말라나 크림이나 조인트 사이사이의 잘은 말라나 크림을 달구며 크림 같은 연기를 빼내어 서로의 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은 우연찮게도 출국일도 가까웠기 때문에 함께 뉴델리로 내려왔고 마침 그곳에는 요즘 사람들이 인도 여행을 많이 가는 것 같아서 자신도 가보겠다며 막 도착한 어린 오대산이 있었다.
그날 저녁식사 후 오대산은 루이와 메이린의 안내 아래 대마초를 배웠다.
“대마초는 풀잎처럼 생긴 거 아니에요?” 손가락을 다섯 갈래로 쫙 펼친 오대산을 보며 루이와 메이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잎이 아니라 꽃이죠. 그리고 이건 짜라스. 꽃을 비벼서 만든 거예요. 게다가 이건 그냥 짜라스가 아니에요. 말라나 크림.”
“짜라스? 그게 뭐예요? 크림? 크림이 아니라 무슨 개똥처럼 생겼는데요?”
감히 말라나 크림에게 불경한 소리를 내뱉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딱한 한국인에게 말라나 크림의 가치를 가슴 깊이 느껴야 말라나 크림을 피울 수 있는 법이라며 두 중국인은 약간 발끈한 김에 상세한 가르침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가르침은 대마의 발상지로 말해지는 파미르 고원에서 출발하여 고대 스키타이 사람들의 이동경로를 같이 걸었다. 또한 캔버스(Canvas)의 어원이 카나비스(Cannabis)고 카나비스의 어원이 히브리어 Qaneh-Bosem이며 성경에선 창포라 번역되는 식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대마는 인간의 생활이든 제의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인류가 가장 오래도록 사용해온 식물과의 관계를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히말라야 지역의 문화와 이를 서구 문명화된 세상에 알린 1960년대의 히피 트레일(Hippie-Trail)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대마의 종자는 크게 세 분류로 나뉘는데 사티바, 인디카, 하이브리드다. 사티바는 일조량이 많고 따듯한 지방에 적응한 종으로서 햇빛이 풍부하니 잎은 얇고 키가 큰 특징을 보인다. 반면 인디카는 고원 같은 추운 지방에 적응한 종으로서 잎이 두껍다.
이런 외양적인 구분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취기의 성격에서 두드러지는데, 사티바의 경우 취기가 가뿐하게 머리로 치솟아 들뜨고 유쾌하며 창의적인 기쁨을 일으킨다면 인디카는 취기가 몸을 감싸서 느슨하게 풀어버리며 진정되고 푹신한 행복감 위로 눕힌다.
1960년대 반전 시위나 대마초 비범죄화 시위에서 생명의 평화와 행복과 사랑을 외치던 서구의 많은 히피들은 영적 수행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대마초의 천국을 발견한다.
서구에 알려져 있던 대다수의 사티바 종자와는 다른 온갖 인디카 종자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길러지고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씨를 고국으로 깊은 사명감 아래 가져가 다른 종과 교배시키면서 수많은 종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히말라야 쿠시 산맥의 이름을 포함하는 대중적인 종자, 오지 쿠시 또한 이러한 역사 아래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처럼 사티바와 인디카의 성격이 섞인 종자를 하이브리드라 이르는데 사티바적 특징이 강한 취기면 사티바 우세 하이브리드, 인디카 취기가 강하면 인디카 우세 하이브리드라 부른다.
얼마나 사티바 성향이 강해야 사티바 우세 하이브리드에서 사티바로 분류되고 얼마나 인디카여야 인디카인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다.
800여 종이 넘는 각양각색의 대마 대부분은 어쨌든 하이브리드인 셈이며 어떤 이들은 그냥 사티바, 그냥 인다카라고 부를 수 있는 종자가 과연 있냐며 순수한 사티바와 인디카를 환상 속의 대마로 치부하기도 한다.
여하간 그 결과 탄생한 800여종이 넘는 대마의 다양한 종자에는 인류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루이와 메이린의 주거니 받거니는 오대산의 영어와 인내심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대산은 말라나 크림을 피웠다.
거의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던 두 중국인의 대마 수업 속에서
대마와 인간의 장구한 관계만큼이나 길었던
자신의 삶과 세상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울었다.
이튿날 아침, 오대산은 루이와 메이린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어설프게 오른 주먹을 왼손으로 감싸며 허리를 굽혔다.
그 이후로도 오대산은 루이와 메이린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찾았다.
그 사이 루이와 메이린은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이 5년 전이니 마지막으로 만난 게 5년 전이었다.
루이. 메이린.
잘 지내요?
그럼. 잘 지내지. 너는?
저는 잘 못 지내요.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럼. 도와주지.
오대산은 상하이로 가기로 했다고 한한연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가장 빠른 항공편을 예매했다.
활주로를 요동치며 달리던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 오대산은 자신이 들어 있을 비행기가 지상으로부터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높이까지 떠나가는 느낌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마치 여전히 지상에 발을 붙인 자신이 남아있어서 어느 쪽이든 자신을 상실하는 것만 같았다.
잘도 이런 물건을 만들었구나.
지금부터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더라도 아마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얼굴들과 오래도록 켜켜이 앉아 있다가 문을 열어주면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줄을 서서 나가버리라고.
떨어지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떨어져서도 안 되지만 구름 위의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떨어져야 할 높이가 얼마나 주어지는 시간일지, 그동안 부딪치기보다 먼저 의식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할지 상상하게 만들려고.
어디가 열리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얼굴 앞으로 떨어지는 노란 산소마스크로 코와 입을 덮기 보다는 눈을 덮으라고 있는 살갗으로 눈을 꼭 감아야겠다.
한 달 사이 쌓인 불안만큼이나 곤두선 신경다발 때문인지 비행기가 웅웅거리는 소리, 승무원들이 비좁은 통로 사이로 카트를 끌며 식사를 소와 닭 중 어느 짐승으로 고르시겠냐고 물어보고 은박지로 덮은 플라스틱 상자를 부스럭부스럭 건네고 마실 것은 뭘 마시겠냐고 물어보고 콜라나 주스나 맥주나 와인 따위를 따라주는 소리가 한없이 반복되며 점점 가까워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중이었다. 일찌감치 ‘깨우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영어로 눈이 있을 자리에 인쇄한 안대를 쓰고 있었지만 오히려 실내가 더 과하게 보인다고 투덜거리며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오대산은 소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비행기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누가 들려주었던 것이 두루뭉술하게 귓가에서 어른거렸다. 누구였더라.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에 잘 귀를 기울여보니 도라지였다.
얼굴이 떠오르고 주변의 얼굴들도 떠올랐다. 오대산의 집이었다.
폭설이 내려서 다들 하루 더 뭉개고 간다고 방에서 뭉개는 중이었다. 물론 방안은 뿌옇게 연기가 자욱했고 도라지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어떻게 시작하더라. ……대릴. 도라지가 말했다.
이름이 대릴이었어요. 당시에는 뉴욕이 아직 어쨌든 (대마가) 불법은 불법이어서 어쩌면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어요.
문만 열고 나가도 복도의 이 문이든 저 문이든 지날 때면 떨 냄새가 자욱한데 문을 똑똑, 누구세요? 옆집인데 그 풀은 어디서 사요?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구글에 정직하게 검색했지요.
하우 투 바이 카나비스 인 브루클린. 그러니까 뭐가 나왔게요? 웬 미국 지도가 있고 동네마다 활동하는 딜러가 브루마블 위의 말처럼 표시된 사이트가 뜨는 거예요. 뉴욕은 물론이고 워싱턴 DC, 시카고, 어느 도시든 다 그런 딜러들이 단추 상자 속의 단추 무더기마냥 빽빽하더라고요.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캘리포니아주의 서부권은 이미 합법화된 시점이었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고요.
여하간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딜러만 해도 너무 많아서 어느 선생님께 부탁드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딜러 아이콘을 클릭하면 연락처와 뭘 파는지가 나오는데, 오지 쿠시, 사워 디젤, 브루스 배너, 퍼플 헤이즈, 레몬 헤이즈, 수퍼 레몬 헤이즈, 고스트 트레인 헤이즈, 크리티컬 쿠시, 갓버드, 블루 드림, 걸스카우트 쿠키, 트레인렉, 잭 헤러(RIP), 워터멜론, 선센 셔벗, 웨딩케이크, 치즈, 블루베리 머핀, 키 라임 파이, 망고, 아이스크림 케이크, 피넛버터 브레스, 그랜대디 퍼플, 퍼플 펀치, 엔드 게임, 에일리언 오지, 더반 포이즌, 아카풀코 골드, 말라위 골드, 골든 타이거…… 정말 끝이 없는 거예요! 손바닥을 이마에 철썩 붙이며 깨달았어요. 과연 선진국은 괜히 선진국이 아니구나.
근데 가까이 계신 딜러님들 중에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취급하시는 훌륭한 선생님께서 계신 거예요! 그 영화(〈파인애플 익스프레스〉) 안 본 친구는 없지요? 어, 있네. 이걸 안 본 친구가 있다고? 그럼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주인공이 법원 고지서 배달부인데
어느 으리으리한 집에 배달을 가요.
고지서 주기 전에 잠깐
차에서 조인트 하나를 피우는데
총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 집 창문을 보니까
집주인이 총으로 누굴 쏴 죽이고 있어요.
주인공이 너무 놀라서
피우던 조인트를 그냥 창밖에 버리고
차를 빼는데 워낙 마음이 급하다보니
앞뒤로 주차된 차를 막 쾅쾅 박아.
길에서 누가 앞뒤 차를 찌그러트리고 있으니까
서둘러 뛰쳐나온 살인자가
목격자가 꽁무니를 내뺀 자리에서
여전히 먹음직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조인트를 발견하고
한 모금을 빨아요.
그리곤 말하지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맛만 보고 뭔지 맞추는 이유가 뭐냐면 그자가 떨믈리에(Budtender)라서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길러서 유통하는 갱단의 보스였던 거예요! 심지어 그 종자,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는 워낙 귀해서 중간 딜러 한 명한테만 공급한 상황인데, 그 중간 딜러는 주인공한테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판매한 딜러한테만 공급한 상황이고, 그 딜러는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주인공한테만 귀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팔았으니 말하자면 주인공이 유일하게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구매한 흡연자인 상황인 거예요. 아주 큰일 난 거지. 그 친구는 아주 큰일이 난 거야…….
근데 내가 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얘기를 하고 있었죠? 아는 친구? 역시 부엉이 기억력이 좋다니까. 그래, 바로 그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파는 선생님이 브루클린에 계신 거예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보냈지요. 그 영화 보고 언젠가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맛보는 게 버킷 리스트 중에서도 중요한 한 줄이었거든요.
밖에서 만나서 악수로 현금과 꽃을 나눌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더라고요. 배달 서비스라는 거예요. 배달의민족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이런 게 진짜 배달이지. 근데 건물이랑 호수 알려주고 기다리니까 갑자기 좀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총을 숨긴 강도면 어떡하지? 쿵쿵. 누가 문을 두드려. 살며시 열어주니까 드레드락을 얹은 기린처럼 길쭉길쭉한 흑인 남자가 신발도 안 벗고 들어와서 딱딱한 서류가방을 똑딱똑딱 여는데 빨간색, 초록색, 보라색 플라스틱 통이 가득한 거예요. 정신이 아득해졌지요. 당시 리플리(Leafly.com), 다들 리플리 알죠? 리플리에서 사티바는 빨간색, 하이브리드는 초록색, 인디카는 보라색으로 분류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나는 초록색 통들이 모인 구석을 가리키며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찾는다고 말했죠. 그러니까 그 사람이 씩 웃어서 가지런한 치열을 보이며 초록색 통 하나를 집어 뚜껑을 열고 말하는 거예요.
냄새 맡아봐.
코를 가져다대기도 전에
공기 중에 화사한 열대과일 향기가 번졌고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어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꽃송이로 가득한
지퍼백을 열어주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딜러가 건네지요. 주인공은 슬쩍 맡아보다가
어느새 얼굴을 지퍼백에 빠뜨릴 것처럼 박곤 말해요. “이 안에서 살고 싶다”고. 냄새를 맡아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대릴은 자주 왔고 나도 대릴네 놀러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세월이 가고
내가 아주 귀국할 날이 다가오니까
대릴이 선물이라면서
브라우니 세 조각을 담아 주더라고요.
이거 정말 세니까
조금씩만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요.
공항에서 하나 먹었어요.
별로 취기가 안 느껴지는 거야.
원래 요리해서 경구로 섭취하면 취기가
한두 시간 뒤에 오잖아요. 나도 알긴 알았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세 조각을 다 먹은 거예요.
맛있더라고.
참 잘 구운 브라우니였어요.
근데 좌석에 앉으니까
몹시 심하게 편안하고 나른해서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눈을 감았는데
보니까 누가 깨우고 있어.
보니까 승무원이야.
보니까 다른 승객은 다 내렸고
보니까 한국이야. 침을 삼키려는데
보니까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파.
보니까 목이 너무 말라 있는 거야.
보니까 내내 입을 헤 벌리고 잔 거였어요…….
이게 내가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사랑하는 이유예요.
누구에게나 소중한 종자가 있잖아요. 그 향이나 취기보다도
파인애플 익스프레스와 친구가 되면서 겪었던 온갖 일들이 귀중하니까.
대마와 맺은 관계가 다시 여러 관계와 우리를 연결시키니까. 어쩌면
대마는 대마 자체보다도 대마와 우리가 맺는 관계 자체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말이에요. 밖에는 눈이 내리고
이 시골집 방 안엔 소중한 친구들이 연기 속에 휘감겨 있지요.
이건 아름다운 기억이 될 거야.
그런 기억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해요.
그건 정말 아름다운 말이었다.
오대산은 안대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한연의 얼굴들,
눈 내리던 날의 연기,
‘그것’의 꽃향기,
말라나 크림,
불가에서 일렁이는
루이와 메이린의 눈빛을
떠올리다 잠들었다.
루이와 메이린이 마중 나와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둘은 오대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 침묵이 미안해서 오대산이 먼저 “무슨 일이냐면……” 말문을 열었고 “쉿. 가서 얘기하자고.”
메이린이 그 문을 닫았다. 거실 탁자엔 자사호와 숙우와 찻잔 세 개, 팽팽한 조인트와 그라인더와 조인트 페이퍼와 라이터와 연꽃 모양의 재떨이가 아름답게 배치돼 있었다.
“짜잔.” 루이가 양팔을 벌리며 환히 웃어서 오대산도 웃으려 했는데 얼굴에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하나 피우고 씻고 푹 쉬라고 준비해뒀지.” 오대산은 영혼을 놓치듯이 웃어 보이며 고개를 느슨하게 내저었다. 그러자 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너 정말 무슨 일이 있군. 네가 대마를 마다하다니.”
오대산은 한숨과 함께 한한연의 <천하제일 삼꽃 대회>와 지리산의 수감과 재판과 자신의 이름이 보란 듯이 들어간 편지에 관해 말했다.
얘기를 하면서 오대산은 위로받는 기분을 느꼈는데 루이와 메이린은 제이드와 달리 심각하고 괴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보통 사람이 짓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세상에선 우스꽝스럽게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느 세상에선 무섭도록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는 세상이 새삼스럽게 괴상하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중국은 한국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는데 섬이나 다름없는 한국의 지정학적 특징과는 달리 육로가 어느 방향으로든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대마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이와 메이린이 “우리는 피우면서 들을게.” 말하곤 조인트를 나눠 피우다가 다소 바보 같은 풀린 표정으로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더라?”라거나, “미안한데 나 진짜 듣고 있었거든? 근데 다시 한 번만 얘기해볼래?”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대산은 그게 밉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자신이 이해하고 자신이 왜 이러는지를 그들이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럼 돌아갈 때까지 안 피우려고?”
“응. 말했다시피 소변이나 체모에서 THC가 나올까 봐.”
“검사를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아!” 갑자기 박수를 벼락처럼 치길래 깜짝 놀란 루이가 왜 그러냐는 듯 메이린을 쳐다보았다.
“그거 있잖아.” 흥분한 메이린이 루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거?” 루이가 눈썹을 구부렸다. “약!” 약? 갑자기 웬 약? 약초는 우리가 지금 피우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멍했던 루이의 눈빛이 서서히 중요한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휘둥그레지더니 루이가 천둥처럼 박수를 치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잠깐. 나 지금 못 움직이겠네. 오랜만에 많이 피웠더니. 반가운 마음에…….” 다시 앉으면서 루이가 멋쩍게 웃었다.
메이린이 방으로 가더니 주황색 보자기로 싼 꾸러미를 가져왔다. “이건 중국 전통 한약인데 몸을 정화해주지. 이걸 일주일 전부터 매일 마시면 검사에서 THC의 T자도 안 나온다고.”
“정말?”
“그럼. 중국은 신농씨 시절부터 대마를 사용해온 나라야.” 메이린이 자부심으로 벅찬 얼굴을 끄덕거렸다.
“그 시절엔 검사를 안 했을 거 아냐.” 메이린의 따가운 눈길을 느끼자마자 오대산은 얼른 덧붙였다. “머리카락에서도 안 나와?”
“모르겠는데. 그러겠지? 그렇지? 안 나오지?” 메이린은 붕괴하는 다리처럼 소파에 머리를 걸친 루이가 잠의 바다로 침몰하기 직전에 끌어냈다. “모르겠는데. 그럴걸. 몰라.” 루이는 본인의 대답이 무성의하게 보일까 염려되었는지 주섬주섬 덧붙였다. “소변은 확실하게 안 나오지. 피도 안 나올걸. 머리카락도 안 나오겠다. 몰라.”
“부작용 같은 건?”
“부작용은 잘 모르겠어. 근데 효능 때문에 일주일은 늘 화장실 근처에서 지낼 필요가 있어.”
오대산은 그라인더에 소복하게 쌓인 대마초의 고운 표면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아냐. 친구들 볼 면목이 없다. 마음이 무거워서 못 피워.” 그건 안타깝고도 신기한 모습이라 루이와 메이린은 서로의 눈빛을 살폈다.
“난 씻고 좀 자도 괜찮을까?” 둘은 끄덕였다. 오대산은 씻고 누웠다. 그대로 잠들어버리기 전에 메시지를 보냈다. 잘 도착했어.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떠올라 머릿속을 파리처럼 맴돌았다.
어디에 잘 도착했다는 말인가? 심지어 메아리까지 치기 시작했다. 잘 도착한 곳이 어디란 말인가? 뭐가 잘 도착했다는 것인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하이의 소파가 결국 오대산이 도착한 자리였다.
다 보이니까 마당에서 키우지 말라는 자신의 조언을 지리산이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대마가 햇볕을 쬐고 비를 맞고 바람을 쐬면 좋겠다는 지리산의 순진하고 무구하기 짝이 없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면 지리산이 잡혀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지만 또 생각해보면 대마를 피우고 기르는 이상 언제나 어떻게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은 떨쳐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언젠가는 누가 걸려도 걸렸겠지. 다들 그걸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변호사 선임 없이 할 말을 해야겠다며 법정 드라마 같은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내심 그렇게 바위에 부딪치는 계란이 다른 계란도 부르며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기도 했으니까.
이를테면 계란 물로 푹 적신 바위가 눅눅해지다 못해 결국 썩어 허물어지는 일. 그리고 밝아오는 좋은 세상의 첫 번째 태양. 그러면 좋겠다. 그러면 좋겠다. 그 빛을 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좋은 세상을 꿈꿨지. 좋은 세상이 오면 나는 디스펜서리를 열 거야. 나는 농장을 차려야지. 나는 대마를 소재로 영화를 찍어야지. 소설을 써야지……(“야, 그건 지금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지만 바로 이곳이 오대산이 도착한 곳이었다.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느낌으로 출렁이는 바닥의 밤이었다.
밤은 오대산 바깥으로 얼마든지 뻗어나가며 오대산을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촛불처럼 외면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대마를 배우지 말았어야 했나? 그러면 여기가 아니겠지. 다른 데겠지. 루이와 메이린을 모르는 곳이겠지.
세상이 즐겁고 기쁜 곳일 수 있다고 가르쳐주던 그날 밤의 말라나 크림도 모르는 데겠지. 처음으로 대마를 피우고 화색이 돌던 벌의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곳이겠지. 지리산도 남산도 비둘도 모르겠지. 한반도 한약 연구회고 뭐고 다 없는 일이 되고 말겠지. 세상이 꼭 살만한 곳 같아.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의 표정도. 나는 그저 그런 표정을 더 많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표정. 살만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 죽지 못해 사는 세상 말고 살만한 세상의 표정.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 지독하게 피곤했지만 오대산은 너무 시끄러워 잠에 들기 어려웠다. 그건 물론 남산도 그랬다. 제멋대로 지껄이며 말의 꼬리를 무는 말이 보여주는 온갖 미래의 괴로운 장면들 때문에 눈을 감아도 감은 게 아니었다.
부엉도 그랬고 은행도 그랬다. 비둘, 사루, 도라지, 오소, 구리, 족제, 거북, 삽살 다 그랬다. 세상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침상에서 그러하듯 잠을 이루기 어려웠고 사람은 잠을 자게 돼있었다. 가령 대마를 잔뜩 피운 루이와 메이린은 연기와 곁들인 보이숙차에도 불구하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루이. 메이린.” 하지만 누가 이름을 부르며 불을 켜는 실례를 무릅쓴다면 꿈나라를 황급히 저버리고 나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야.” 화들짝 놀란 둘은 문지방의 오대산을 현실로 확인하기 위해 눈을 비볐다. “나 그 약 지금 먹어도 돼?”
“약? 무슨 약? 대마 피우려고?”
“바보! 약초 말고 THC 빼는 약 말하잖아.” 메이린이 루이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대산. 괜찮아?”
괜찮냐는 말에 오대산은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처럼 우는 오대산을 메이린이 감싸 안았다. “맞아. 힘든 일이지. 알고 말고.” 그 사이 루이는 약을 달여 사발에 따라왔다. 꼭 사극의 사약 같았다.
“마셔. 화장실 자주 갈 거야.” 오대산은 약에 눈물과 콧물을 섞어가며 들이켰다. 내가 앞으로 대마를 피울 일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혹시 나 머리도 밀어줄 수 있어?”
“우리는 미용 모르는데.”
“아니. 빡빡.” 루이와 메이린은 곁눈질로 서로의 얼굴에서 당혹감만큼이나 짙은 슬픔을 읽어냈다. “반반씩. 한 사람이 반 밀고 다른 사람이 반 밀고. 둘은 내 사부님이잖아.”
화장실은 세 사람이 들어가기엔 비좁았다. 루이가 바리깡으로 오대산의 반쪽 머리를 미는 동안 메이린은 이를 지켜보았다. “나쁜 일이 머리카락과 함께 다 우수수 떨어져나간다. 다 떨어져나간다…….” 루이가 속삭였다.
다른 반쪽을 메이린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미안해. 우리가 그때…….”
“아니야.” 민둥산이 거의 다 된 오대산이 말했다. “나는 대마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 덕분이야. 고마워.” 메이린이 울기 시작하자 루이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밑 집인지 윗집인지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댔다(“지금 새벽 3시다. 정말 미치겠네!”).
오대산은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뒤집어쓴 채 자신을 안고 우는 두 사부님에게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줄래. 배에서 신호가 와서.”
뱃속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가게 돼있구나. 요란한 소리를 감추려고 틀어놓은 물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거울은 보면 안 되겠어. 적어도 오늘 밤은 그래야겠어. 뒤돌아보지 마. 문밖의 사람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대답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산아, 돌아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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