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리안 하이웨이』 6.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完)

Author
김도
Date
2026-03-19 04:20
Views
325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Column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6.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왔습니다.”

“그 날이요?”

“네. 두 번째 재판 날이요.” 나의 아는 친구는 그가 아는 친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알게 모르게 그와는 딱히 상관이 없을 등장인물들에게 이입이 되었던 모양인지 감정이 적잖이 복받친 모양이었다.

아는 친구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눈시울을 붉힌 채 너울거리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아, 물론 눈이 붉은 이유는 차오르는 눈물 때문이었고 연기는 그래, 찻물에서 피어오르는 훈김이었다.

그래, 비록 늦은 밤이었지만 아는 친구도 나도 차를 좋아해서 혹여 잠이 안 올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대홍포나 봉황단총, 동방미인 같은 우롱차는 아니었고 정산소종 같은 홍차는 더욱 아니었고 그래, 보이차였다. 생차 말고 숙차. 그래도 나중에 잘 생각을 해서 보이숙차를 마셨던 것이다. 그러니 아는 친구가 충혈된 눈으로 응시하고 있던 것은 숙우에 따라놓은 간장처럼 진한 보이숙차의 수면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훈김이었다.

그가 보고 있길래 나도 멍하니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찻물의 수면에선 찻물의 수면에서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모습보다 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아, 그 전에 그 전날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산이가, 아니, 오대산이 귀국했습니다.”

“재판 전날에요?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오대산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 아니었나요?”

“물론 그러기로 돼있었는데요. 하루 전인가, 이틀 전인가, 갑자기 오겠다고 해서…….”

“이틀 전이었어요. 재판 이틀 전이요. 아, 적어도 제가 아는 친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아는 친구의 말을 끊으며 사실 관계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다듬으려던 내가 아는 친구가 아는 친구는 물론 자신이 아는 바 또한 그저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므로 정확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준다면 고맙겠다는 듯이 겸연쩍게 부연하곤 보이차를 홀짝였다. “오늘 차 맛이 참 좋네요.”

“맞아요. 좋은 차는 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나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좌우간 이틀 전에 오대산이 갑자기 귀국의사를 밝혔다고요?”

“나 그냥 돌아갈래. 그렇게 말했다고 들었어요.” 내가 아는 친구가 아는 친구가 말했다.(지금부터 서술의 편의를 위하여 내가 아는 친구가 A, 아는 친구가 아는 친구를 B로 표기하기로 한다.)

“대뜸 그 말만 남긴 그 메일에는 목적지와 착륙 시간이 적힌 디지털 티켓 이미지가 첨부돼 있었죠. 아 물론…….”

“들은 바에 따르면요.” 내가 끼어들었다. “어차피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다 건너 건너들은 이야기라는 진실에 익숙하니까 괜히 들은 이야기라고 덧붙이는 수고를 좀 덜어내도 괜찮지 않을까요?”

“동의.” 한 모금 차를 넘기자마자 C가 말했다. “아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돈은 떨어져가지, 스승 두 사람 눈치도 보이지, 엄마는 왜 귀국을 안 하는 거냐고 자꾸 물어보지, 재판을 했는데 또 연기라도 되면 어떡하지, 머릿속이 어찌나 복잡하고 괴로운지.

제가 이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 오대산이라는 사람한테 이입이 돼요. 꼭 직접 겪은 일처럼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턱 막힌다니까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D가 말했다. “갑자기 온다니까 우리가,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만약에 얘 하나 잡히면 다 끝장인데.

포스터에 이름 석 자 보란 듯이 남겼잖아요. 오.대.산. 덜컥 티켓 한 장 보내고. 시간 보니까 또 출발도 얼마 안 남았어. 안 남았대요. 그렇게 들었어. 아무튼 그래서 긴급 회의가 열렸죠. 고생 많이 했고, 온다니까 마중은 나가야겠는데…….”

“와.” 찻물은 넘긴 E가 마치 그때를 회상하는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처럼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생쇼야. 다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오대산이 나오면 각자 배정 받은 출구로 나가서 주차장 가까이 있는 흡연실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니, 했대요. 넌 A다. 넌 B로 나가라. 넌 C. 넌 D. 뭐하는 짓이야, 진짜. 무슨 스파이 영화도 아니고.”

“근데…… 착륙은 한 시간도 전에 했다는데……” A가 말했다.

“안 나오는 거야…….” B가 말했다.

“혹시…… 못 나오는 거 아니야? 지리산처럼……?” F가 말했다. 아는 친구들은 이야기 속 한한연 친구들처럼 입국장 자동문으로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듯 눈을 게슴츠레 좁혔다.

“어디 줄 서 있는데 누가 갑자기 어깨에 턱 손을 얹은 거지. 오대산 씨 되시죠?” D가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건데!” E가 허벅지를 철썩 때렸다.

“솔직히 나도, 아니 대산이도 그런 걱정을 했을 거야. 입국하는데 공항에서 붙잡히는 상상을 했을 거야. 근데 오대산은 그냥 줄 서서 심사 받고,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짐 가방 기다리다가 찾아서 끌고 나왔을 거야. 보통 원래 그 정도 걸려.”

“나왔다!” G가 나지막이 탄성을 터뜨렸다. 사람들 사이사이 흩어져있던 A나 B나 C나 D나 E나 F나 아는 친구들은 그 속삭임에 가까운 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캐리어를 끌고 자동문을 빠져나오는 까까머리 오대산을 발견한 한한연 회원이라도 된 것처럼 각자 배정 받은 게이트 출구로 흩어져 빠져나가는 상상에 잠겨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무섭고 긴장되고 우습기도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립기도 한, 그런 꿈.

“흡연실에서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하나 피우고 있자니까 얘가, 아니 걔가, 아무튼 오대산이 들어왔어요. 들어왔대요. 머리는 빡빡이지, 얼굴부터 무슨 온몸이 다 풀이 죽어서 되게 불쌍했다는 거예요. 걔 언니는 또 그게 얼마나 안쓰러웠겠어요. 하…….” G는 그 언니, 범이라는 인물에 꽤나 감정 이입을 겪는 모양인지 찻물을 마시고 숨을 참은 채 붉은 눈에서 혹여 물이라도 흘릴까 고개를 젖혔다.

“그래서 왜 그렇게 늦게 나왔냐고, 야,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퍽퍽 때려줬대요.”

“오래 걸리더라고요. 모든 게 다. 내리는 것도. 짐 찾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C가 고개를 숙이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둘이서 그러고 있으니까 못 봐주겠어서 안아줬대요.” B가 말했다.

“한 겹, 한 겹. 세 사람을 안고, 네 사람을 안고, 한 덩이가 되어가는데…….”

“그때 누가 들어왔잖아. 아니, 들어왔어요. 아니, 들어왔을지도 몰라요? 딱 봐도 오랜 비행 때문에 니코틴 금단증상으로 적잖이 고생한 얼굴의 아저씨라면 적당했겠어요. 웬 여러 남녀가 훌쩍이며 부둥켜안고 있어도 아랑곳 않고 들어와 순식간에 담배 하나를 해치워버리고 나가버릴 정도로 다급했던 아저씨요.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놓아주었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암스테르담이나 상하이나 어디든 이 세상을 덮고 있을 하늘은 하나일 텐데 다리를 건너고 도로를 달리면서 보이는 하늘과 하늘을 이루는 구름이나 빛의 색깔, 멀고 야트막한 산들이 오대산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향에 돌아왔다고.

너를 이루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장소에 도착했다고. 도착했다는 기분.

그것이 오대산이 조수석에 앉아 차창에 밀려드는 풍경을 받아내며 느끼는 감정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답답해지는 아파트와 빌딩이 만족을 모르는 종양처럼 뻗어나가는 서울의 풍경도 어째선지 아름답게 느껴졌다.

다들 여기 모여 살고 싶은 이유랄 게 있는 거겠지. 모두가 들어있다고 봐도 좋을 야경의 반짝이는 일부가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 이상할 정도로 온갖 곳에 덕지덕지 붙은 화면과 그 너머 광고 이미지의 힘 빠지도록 우스꽝스러운 반복을 버텨내면서. 웃음기를 잃어가면서. 웃음기를 잃어갈수록 닮아가는 얼굴들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끼워 맞추면서. 곧 피겠네. 지나가는 것들 사이사이 심어놓은 벚꽃나무들은 곧 꽃잎을 터뜨릴 것처럼 익어있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고장 난 폰이 열리지 않고 앞으로도 고장 난 채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그들이 머리를 모아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구태여 지리산을 만나겠답시고 먼 길을 운전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내일 재판에서 만나기로 돼있는데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뭣하러 비싼 시간을 내겠는가.

변호사야말로 시간을 파는 직업인데. 백변은 교도소를 향해 뻗어나가는 도로를 따라 서울로부터 남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여긴 벚꽃이 폈네.

별로 멀리 온 것 같지도 않은데 벚꽃과 진달래와 개나리와 이름 모르는 봄에 피는 꽃들이 도로가의 산에 붙은 불처럼 피어있었다.

k그러다 탁 트인 곳을 지날 때면 형형색색으로 여기저기 붙은 봄꽃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근사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저런 데 살아도 좋겠네. 문만 열고 나와도, 아니 창밖만 봐도 기분은 좋겠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백변은 피식피식 고개를 저었다.

아내와 아들, 딸은 시골이라면 질색이었다. 쉬는 날 아침 비명소리에 놀라 덜 깬 정신으로 거실로 나왔을 때 천장에 바퀴벌레가 붙어있다며 겁을 먹고 속상해진 아내가 떠올랐다.

비싼 집인데 돈값을 못하네. 자신은 아마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시골엔 벌레가 훨씬 많겠지. 바퀴벌레만 많은 서울의 집과는 다르게 이 벌레 저 벌레 아주 득실거리겠지. 벌레라면 질색인 건 가족과 마찬가지인 백변은 상상을 따라 기어온 벌레들의 모습에 잠깐 몸서리를 쳤지만 어떤 이유에선가 초등학교 과학 시간이었나 플라스틱 방충망과 채집통을 준비해서 잔디밭이나 나무 그늘로 가게 하던 여름의 매미 소리가 떠올랐다.

물끄러미 침묵을 지키며 지켜보던 다리가 많고 여러 색을 띠던 것들. 어쩐지 조금은 그 이상한 사람들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모르지. 나이를 먹고 은퇴할 때쯤 되면 자식들도 나갈 거고. 우리가 변할지도 모르지. 시골이 좋아 보이고, 조용한 게 좋아 보이고, 텃밭도 가꾸고. 상추 같은 거. 양상추나 뭐 그런 거. 키우는 게 대마는 아니어도 뭐든 키우다보면 그 사람들이 덜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 이번 일이나 다른 일이나 이번 일과 다른 일들로 인해 필요한 연락이나 메일이나 자료 말고 그냥 딴 생각이나 하다 보니 어느새 차는 교도소에 와 있었다.

“그냥 한 번 와 봤어요.”

투명한 차단벽 너머 지리산은 수화기로 들은 말이 의외였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내일 재판이잖아요. 뭐가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선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백변은 흐린 말의 끝이 흐려지다 흩어지는 자리를 바라보듯 허공의 어느 지점을 보다가 말했다.

“밖에는 벚꽃이 많이 피었어요. 지리산 씨가 나와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나서 남은 침묵을 못 견디겠다는 듯 백변은 덧붙였다.

“뭐, 물론 재판이 잘 끝나야 그럴 수 있겠지만요. 그러려면 망가진 스마트폰이 열리지 않길 바라야겠죠. 그게 열리면 벚꽃이고 뭐고 상관이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아무튼…… 내일 봐요. 법정에서요.”

지리산은 습관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목이 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리산은 기침 몇 번을 수화기 바깥에 털어내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은 감방으로 들어가며 자신이 이곳에 이렇게 오래 있으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일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생각도 하지 못했던 시간을 여기서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또한 실감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살다가 보면 셰프 삼촌이 먼저 나갈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깨 너머로 감방 요리를 배운 자신이 셰프 삼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르는 일만 내일 남아있었다. 내일 이후의 모든 내일까지 모르는 일들만이 남아있었다. 그건 아마도 지리산이 이 세상에 그냥 한 번 와본 첫 번째 오늘 이후로 언제나 그랬을 것이다. 지리산은 그걸 느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진실은 오히려 지리산의 마음을 조금은 가뿐하게 비워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어떻게든 살려고 하겠지. “살아보려고 

피웠던 대마가 저를 여기까지 데려올 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앞으로도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겠죠.” 의사 삼촌이 말했다.

“의사 삼촌은 나가게 되면 대마 계속 피우실 건가요?” 지리산이 물었다.

“피우겠죠? 기르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겠죠?”

“이 고생을 했는데도?”

의사 삼촌은 이 모든 고생이 얼굴 위로 지나가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쩌겠습니까. 

대마가 이 삶을 살렸으니 저도 대마를 살려보려고 하는 거죠.”

의사 삼촌은 허탈하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지리산은 법정으로 들어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리산이다.” M이 말했다. “지리산은 재판정으로 들어올 때 웃음을 참으려고 무지 애를 썼대요. 방청석 대부분이 휑한데 한 열에 어떤 면에선 이곳과 너무 안 어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너무 잘 어울리는 한 무리의 친구들이 붙어 앉아서 자신이 들어오자마자,”

“리산이다.”

“리산이다.”

“리산이다.”

 

무슨 수풀에 부는 메아리처럼 술령거렸으니까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데

살이 많이 빠졌네.

머리가 무슨 밤송이 같네.

옷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그런 소리 하지 마, 멍청아, 잘 생겨서 그래, 잘 생겨서.

우리가 속닥거리는 게 신경이 쓰이더래요.

 

재판은 지난번과 비슷했어요.

초범이고 한 주만 키웠고 유통의 증거도 없다. 그러니까

검사는 포렌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또 뭐라뭐라 하는데

 

“이의 제기합니다.” 의외였어요. 정말

백변이 조금 화난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런 사람인줄 몰랐는데

 

대마를 기르고 피우는 죄를 지었지만

초범인데다가 유통했다는 직접적인 증거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랬으리라는 심증만으로 드러난 죄의 수준보다 가혹하게

체포 시점부터 지금까지 피고인은 구금돼 있다. 심지어

되는지 안 되는지, 그럴 필요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포렌식 때문에

그 기간이 연장되고 있다. 이미 갇혀 지낸 시간만 따져보아도

지은 죄에 비해 과한 처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지리산 씨는 지역 사회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활동가로,

노쇠한 이웃의 일손을 돕고 어린이를 가르치는 등 이웃과 어울리는 선량한 젊은이로 살아왔다.

이 사실이 대마를 기른 피고의 법적인 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대마를 보란 듯이 텃밭에서 기른 죄와 무관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마약에 중독되어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주변에 해악을 끼치기보다 오히려

지리산 씨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면

선처를 고려해주셔야 하는 게 아닐까. 선처를 고려해달라고

 

백변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한 사람처럼 말하길래

우리 중에도 눈가를 훔치거나 안경을 닦는 애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 와중에도 속단하기엔 이르고 두렵기도 했지만

 

오늘 리산이 나오겠다.

오늘 리산이 나온다고?

방금 뭐라고 했는데? 나 못 들었어.

야, 미리 김칫국 좀 마시지마, 제발.

조용히 좀 해. 판사님이 여기 쳐다보잖아.

어쨌든 우리는 슬슬 웃고 있었고

숲에 부는 시원한 바람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지리산은 또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쓰며 속으로 말했대요.

얘들아. 제발 닥쳐.

 

그리고 마침내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슬픔과 기쁨을 감추기 어려웠어요.

집행유예 1년. 보호관찰 2년.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잘못을 반성하고 바르게 살기를 당부하면서 판사는

어째선지 우리와 눈을 맞추길래

혹시 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봐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눌러가면서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비명을 조금만 더 가둬두면서

복도를 빠져나가고 현관을 빠져나가

그 모든 것이 빠져나가도록 풀어주었어요.

 

막 웃고

막 울고

막 안고

막 앉고

그러는데 지리산이 탄 호송차가 보였어요.

우리는 마치 퍼레이드 차에 따라붙는 애들처럼

달려가서 소리 질렀어요. “리산아, 축하해!”

“축하해, 리산아!”

“리산아, 축하해!”

 

뭐 하시던 분이냐고 물어봤대요. 교도관이

친구분들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하지 마세요! 하지 마시라고!

어차피 차 안이라 안 들리는데 소리치며

손사래를 치길래 우리는 또 그게

 

축하한다고. 

잘 되었다고.

손을 흔들어주는 줄 알고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안녕하세요.

고마웠어요.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어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어요.” 나는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이미 깊은 밤이라 차를 마시던 아는 친구와 아는 친구가 아는 친구들은 어느새 잠에 들러 떠나고 어느 아는 친구 하나만 남아 나와 같이 차를 마셔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교도소로 가서 체포당한 그날 아침의 차림새로 나온 지리산에게 두부를 먹여줬대요.” 아는 친구는 차를 마시고 쓰게 미소 지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대요. 축하 자리를 가지려고 하는데 되게 이상했던 거예요. 모이면 같이 대마를 피우던 친구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대마가 없어요. 있더라도 피우지 않았을 테고, 피우지 못했을 테고, 심지어 다들 대마를 피우지 않은지도 오래된 거예요. 그렇다보니 어색했던 거예요. 어디로 가지? 일단 영업하는 가까운 음식점을 찾자! 그리고 교도소 소재지 읍내에서 그 친구들 다 들어갈 수 있고, 영업도 하는 중국집을 찾아 들어갔대요.” 친구는 다만 티브이에서 그날그날 비슷한 뉴스만이 흘러나오는 적막한 중국집 실내를 둘러보는 눈빛으로 숙우에 담긴 보이차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좋은 날이니까 좋은 거 먹자 해서 메뉴판에서 비싼 걸 가리키며 전가복 돼요? 안 된대. 전복이 없대. 유산슬 돼요? 안 된대. 깐풍기 돼요? 마침 닭이 다 떨어졌대. 그래서 자장면과 탕수육만 시켜 먹는데……. 축하한다, 좋은 날이다, 고생했다, 그런 말만 나누다가 자꾸 조용해지는 거예요. 대마 얘기 없이는 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는데, 우리의 좋은 기억, 괴로운 기억 모두 대마와 얽혀 있는데, 대마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발음하면 안 될 거 같았던 거죠. 그래서 무슨 고장난 자장면 시식 기계처럼 축하해, 고생했어, 괜찮아, 따위의 말만 반복하다가 이 사실이 너무 괴로워서”

 

한한연은 각자의 집으로 멀리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지리산을 발견한 이웃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을 데리고 와 총각 왔냐고 반색하며

“왜 그런 걸로 착한 총각 잡아가냐고.

그게 뭐라고. 옛날엔 이 동네에서 집집마다 키웠는데.

나는 허벅지에 아직도 삼베 짜던 흔적이 있다고.

우리가 안다고. 좋은 총각이라고”

파출소에 가서 합심하여 따졌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몸빼를 걷어 삼의 줄기가 남긴 검은 흔적을 보인다.

그랬냐고, 그러셨냐고 웃으며 

지리산은 말한다. “괜찮아요, 

할머니. 이제 다 괜찮아요.”

 

며칠 뒤 오대산은

여기야?

아니잖아.

여기야?

없잖아.

벌과 함께

가문비나무 앞을 파다가

스테인리스 김치 통을 꺼낸다.

안에는 썩은 건지 축축한 건지

역한 풀이 가득해서

풀은 다시 덮어주고

통은 설거지를 한다.

그 후로

아무도 

섣불리 

불을 붙이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그냥 아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 친구가

이 긴 이야기를 들려준 그날 밤.

나는 대마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서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

조인트 페이퍼로 팽팽히 말고

불을 붙여 연기를

폐의 끝까지 가두었다가

입술 밖으로 풀어주지 않았는데도

마치 뭐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에 홀려 긴 밤을 지났다. 

 

누차 말했다시피 

나는 대마를 잘 안다고

아니, 대마를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아니, 대마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겠지만

 

대마를 피우면서 대마를 부끄러워하고

대마를 몸에 깊이 스미도록 들이쉬다가도

들키기라도 하면 어떻게든 감추려다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서 사죄하고

심지어는 자신은 잘못이 없고

대마를 기른 사람이 잘못했고

대마를 준 사람이 잘못했고

대마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뻔한 뉴스거리가 아니라

 

근사한 것을 보면

이것 좀 봐.

좋아하는 사람을 

지금 이곳으로 부르듯이

세상에

유카라는 이름의 흰 꽃이 있고

유카라는 이름의 흰 나방이 있어서

유카는 유카에게 씨를 먹이고

유카는 유카를 수분시키며

유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유카가

피고 부화하고 지고 쓰러지는

꽃밭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들려주고 싶어지듯이

들어봐.

유카가 유카를 지키듯이

사람이 대마를 살게 하고

대마가 사람을 살게 하며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 수 있을까.

 

 

 

 

 
이전 화 : 『코리안 하이웨이』 5. 스승의 은혜

전체 연재 목록은 칼럼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Total Reply 0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6.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왔습니다.” “그 날이요?” “네. 두 번째 재판 날이요.” 나의 아는 친구는 그가 아는 친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알게 모르게 그와는 딱히 상관이 없을 등장인물들에게 이입이 되었던 모양인지 감정이 적잖이 복받친 모양이었다. 아는 친구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눈시울을 붉힌 채 너울거리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아, 물론 눈이 붉은 이유는 차오르는 눈물 때문이었고 연기는 그래, 찻물에서 피어오르는 훈김이었다. 그래, 비록 늦은 밤이었지만 아는 친구도 나도 차를 좋아해서 혹여 잠이 안 올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대홍포나 봉황단총, 동방미인 같은 우롱차는 아니었고 정산소종 같은 홍차는 더욱 아니었고 그래, 보이차였다. 생차 말고 숙차. 그래도 나중에 잘 생각을 해서 보이숙차를 마셨던 것이다. 그러니 아는 친구가 충혈된 눈으로 응시하고 있던 것은 숙우에 따라놓은 간장처럼 진한 보이숙차의 수면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훈김이었다. 그가 보고 있길래 나도 멍하니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찻물의 수면에선 찻물의 수면에서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모습보다 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아, 그 전에 그 전날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산이가, 아니, 오대산이 귀국했습니다.” “재판 전날에요?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오대산은 이...
김도 2026.03.19 Votes 1 Views 325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5. 스승의 은혜   “뭐가 이상한데?” 물어봐 달라는 듯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에요.”라고 와인을 홀짝이며 주워섬기는 백변에게 선심 쓰듯이 이변이 물었다. “몰라요. 다 이상해요.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일이란 게 그렇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그런 사람들보다 이상해요.” “제일 이상한 게 뭔데. 말해봐.” 백변은 알코올로 인해 풀린 눈으로 와인바 벽면의 있는 줄도 몰랐던 옛날 영화 포스터가 들어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알코올로 인해 끊임없이 나 자신의 재밌거나 흥미로운 점을 드러내고 싶어 자꾸 들썩이는 입을 열었다. “자기들끼리 되게 아껴요.” “그게 뭐가 이상한데? 좋은 거잖아.” “이변. 마약 케이스 맡아본 적 있잖아요. 보통 향정이든 대마든 누가 걸리면 어울리던 사람들끼리 파탄 나잖아요. 누가 누구 불고. 서로 의심하고. 무서워하고. 미워하고. 원한 관계도 드러나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안 그래요.” “아. 그건 흥미로운 점이네.” 백변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 그 사람들 손도 잡았잖아요. 사무실에서 회의 끝나니까 갑자기 누가 다들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의뢰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자는 거예요. 나는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변호사 선생님도 잡으시죠, 그러는 거예요. 정중히 사양했는데 자꾸 같이 하자고 해서 잡았다니까요.” 이변은 마구 웃었다. 헐떡이며 말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백변은 여전히 영화 포스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알고 싶다니까요. 어쩌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되었는지. 그래서 어제는...
김도 2026.03.12 Votes 1 Views 293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4. 풀이 자란다 “너 남산이구나? 나는 웬 스님이 앉아 있나 싶었어. 물론 여기 계셔도 이상할 건 하나 없겠지만.” 비둘은 갑자기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새처럼 두 팔을 어쩔 줄 모르고 퍼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나 만져 봐도 돼?” 구리가 허락은 관심이 없다는 듯 우선 손을 뻗었고 남산이 손목을 낚아챘다. “막으니까 꼭 소림사 같아. 그새 쿵푸라도 배운 거야? 혹시 모르니까?” 구리가 천적과 마주한 사마귀처럼 두 팔을 꺾어 치켜들고 흔들었다. “소림사는 절 이름이고.” 남산이 정정하는데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한 덩치가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어 익숙한 얼굴들을 살피더니 반색하며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삽살이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얼마 전까지는 잘 지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아니었고요.”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수리에서 둥글게 묶은 희끗한 머리에 비녀를 꽂고 아직도 다 헤지지 않은 검은 도복 차림의 거북도 그랬고 탈색한 김에 초록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이렇다보니 파란색으로 색칠했다는 족제도 그랬다. 라니는 그냥 삭발을 해보고 싶었는데 색안경을 끼니까 잘 어울려서 좋다고 말했다. 한 명 한 명 들어올 때마다 백변은 조금 놀랐지만 다년간의 경력을 통해 능숙하게 안면 근육을 흔들림 없는 엄중한 모양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올 사람이 다 온 것 같다고 하길래 논의를 막 시작하려던 차에 웬 방금 전에 실험에...
김도 2026.03.05 Votes 2 Views 343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3. 모두 불태워라! 이튿날 부엉은 서초역 지하철 출구 주변에서 남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원도 있고 서울중앙지검도 있고 변호사 사무실도 많고 거대한 교회도 있어서 담배 피울 일이 많은 동네일 것 같은데 흡연 구역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들어가 후미진 곳을 찾아 파고들어가도 담이든 벽이든 보이는 자리마다 금연구역 딱지를 붙여놓아서 어디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불이라도 붙이면 금방 경찰이든 형광 조끼 단속원이든 와서 과태료 딱지라도 끊을 것만 같은 분위기의 동네였다. 부엉은 두 눈을 끔뻑였다. 침이 따갑게 넘어가도록 피곤했고 절반의 정신은 깨어 있기를 진작 포기하고 그저 다른 절반의 정신에 의해 붙들려 있었다. 정신 차리자. 심각한 상황이잖아. 부엉은 어제 저녁만 해도 접견을 위해 지리산이 수감된 어디 남도 경찰서에 있었다. 지리산의 수확 기념 파티가 있는 날이라서 선물 한 보따리 챙겨 지리산네 대문을 넘었는데 엉망진창으로 초토화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당의 대마가 있던 자리는 파헤쳐져 있어 부엉와 비둘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비둘이 남산과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에게 자신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으니 가까운 지인에게라도 소식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경찰서의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리산은 말했다. 자신은 체포되었고 오늘 훈방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면회를 와주겠냐는 부탁과 영문을 알 수 없는...
김도 2026.02.26 Votes 2 Views 407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2. 수확의 날 누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계속 두드리길래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 꿈에서 나와 보니 꿈밖에서도 누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네, 나가요.” 지리산이 몸을 일으켜 눈곱을 떼며 쾅쾅거리는 문에 가까워지는 아침으로부터 이틀 전의 일이었다. 남산과 구리와 오소와 부엉은 오대산의 집에 모여 있었다. 내일이면 오대산이 바다 건너로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모여서 대마를 피우며 환송의 밤을 보내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편 오대산은 사는 곳도 좋고 짝꿍 벌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배웅해주는 마음도 고마웠지만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해외 레지던스 지원 사업 대상 발표 날부터 달력에 칸칸이 X를 그어가며 하루하루를 해치워왔기 때문이었다. 가보고 싶은 커피숍도 많았고, 맛보고 싶은 종자나 호사스러운 대마, 예를 들어 커다란 조인트에 익스트랙트를 바르고 키프를 뿌린 것처럼 한국에선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을 피워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적대적이거나 불안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영상과 음악을 만들며 대마초와 함께하는 일상을 누려보고 싶었다. 오대산의 속내가 어떠했든 간에 퇴근을 했다든지, 막 일어났다든지, 피자를 시켰는데 큰 것이 왔다든지 어느 구실이든 일단 모여서 대마 연기로 기념하는 친구들에게 오대산의 출국은 물론 누락되어서는 안 될 기념의 이유였다. 그들은 간혹 짖는 먼 개와 먼 새와 실내의 자욱한 연기 가운데 앉아 어떤...
김도 2026.02.19 Votes 1 Views 473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1. 향수병 “9, 8, 7, 6, 5, 4… 2… 0! 마침내 4시 20분이 되었습니다. 자리해주신 ‘한반도 한약 연구회’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제1회 <천하제일 삼꽃 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을 좀 살만하게 느끼기 위해서, 병을 치료하고 조절하기 위해서, 친구가 좋은 거라고 주길래 피워봤는데 진짜 좋은 거라서, 좋은 게 좋은 거라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대마초를 피우고 키워왔지만 대마초를 사랑한다는 점에선 모두 같은 마음이라 봐도 좋을 겁니다.그렇기 때문에 먼 걸음을 하여 오늘 이 자리에 모였겠지요.” 편지를 읽는 친구는 취기 때문인지, 치미는 감동 때문인지, 둘 다 때문인지 붉은 눈시울로 친구들의 얼굴을 훑었다. “<천하제일 삼꽃 대회>는 단순히 높은 THC 함량에 기반한 강력한 취기를 기준으로 경쟁하여 우수한 약성의 대마초를 선별하기 위한 대회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진심과 정성을 쏟아가며 만나고, 성장을 지켜보고, 거두어야했던 친구와의 나날을 회원들과 연기의 형태로 나누는 의식입니다. 부디 오늘의 경험이 ‘한반도 한약 연구회’의 대마와 함께하는 행복하고 안전한 인생과 살만한 세상을 가꿔나가는데 필요한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 읽은 편지를 접어 가방에 넣은 친구는 휴대용 프로젝터를 꺼내어 벽에 비추었다. “아, 쟤 또 뭐 준비했네.” 아담한 시골집에 그득 모인 이른바 ‘한한연’ 친구들의 기대어린 소란은 조그만 프로젝터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전주에 귀를 기울이며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영상이...
김도 2026.02.12 Votes 3 Views 539
코리안 하이웨이 Korean Highway       친구들을 위하여. 네오를 위하여. 마가를 위하여. 마고를 위하여. 메리제인을 위하여.       주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분명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는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 또한 자신 역시 그저 아는 사이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나로선 알 길이 없는 그 친구도 이건 그냥 들은 이야기니까 너무 진지하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심각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당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러기 마련이듯이 이 친구와 그 친구 이야기가 세부적으로 차이가 좀 있던데 어느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가려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와 나는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로 얽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친구가 이 재밌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밤에 삼의 꽃을 그라인더로 갈아 조인트를 말아 피우거나 파이프나 워터봉에 담아 불을 붙이고 들이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대마가 어떤 식물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오이나 김치 같은 건 알아도 대마와 같은 식물이 이 별에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이 글의 갈래는 소설이며 따라서 두말할 것도 없이 지어낸 이야기고 나는 화자로서 만들어지는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글이 한국어로 쓰이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마초를 피우기만 해도 뉴스에 나올 법한 종류의...
김도 2026.02.05 Votes 2 Views 692
대마초를 이야기하는 순간,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이미지’부터 본다. 대마초와 프레임 대마의 악마화를 넘어서, 그 핵심 내용을 말하려 하면, 그 시도는 곧바로 ‘미화’라는 비난으로 돌아온다.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말조차 의심받고, "대마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조차 꺼내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말해야 할 내용을 꺼내기 전부터, 그 말이 어떤 식으로 오해받을지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건 단순한 오해의 문제가 아니다. ‘대마는 위험하다’는 전제가 너무 오래, 너무 깊게 각인돼 왔기 때문이다. 그 각인은 이제 실상을 왜곡하는 수준을 넘어, 그 주제 자체를 ‘꺼내서는 안 될 이야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점점 입을 닫게 되었고, 침묵당한 목소리는 곧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는 건 언제나 두려움, 낙인, 단정적인 혐오다.   우리는 허구의 도덕성이 진실보다 앞서는 사회에 살아왔고, 그 기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대마초를 창의적 사고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경험을 언급하는 순간, “대마를 미화한다”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온 내면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엔 관심이 없고, 단지 “대마를 했다는 사실”에만 매달린다. 지금 우리는, 어떤 물질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말한 사람마저 왜곡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기호용 대마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단지 시각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일 뿐인데, 누군가는 그것을 “모두 함께...
칼럼 네츄럴 레볼루션 2025.04.22 Votes 1 Views 1982
캐나다의 6년 결과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대마초, 범죄인가 선택인가 2018년, 캐나다는 G7 국가 중 최초로 대마초를 전면 합법화했다. 그 결정은 단지 법을 푸는 조치가 아니었다. 국가는 선언했다.   “더 이상 범죄조직이 대마 시장을 지배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대마 소비를 국가의 책임 아래 둬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려했다.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 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의 선택은 실패한 실험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모범 사례로 남았다. 최근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는, 이 변화가 단지 ‘허용’이 아니라 공공성과 현실을 조율하는 전환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왜 아직도 대마를 죄악으로만 규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고 있는가?     단속이 가리던 현실, 제도화가 드러냈다 이번 연구는 2001년부터 2023년까지 캐나다 국민의 가계 지출 데이터를 분석해 대마 시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합법화 직전, 전체 대마 소비의 약 88%는 불법 유통망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2023년에는 그 비중이 24.3%로 줄어들고, 합법 유통은 전체의 72.2%를 차지하게 되었다. 같은 기간 시장 전체 규모는 약 75% 성장했다.   겉으로는 사용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대마는 원래부터 소비되고 있었고 다만 불법이라는 이유로 음지에 숨어 있었으며 이제는 사회가 그 현실을 인정하고, 공식적 루트를 통해 다루고 있다는 것...
칼럼 네츄럴 레볼루션 2025.04.16 Votes 2 Views 1684
“그리고 양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했습니다. 이 철학은 개인의 기능이 정보를 전달하고 정보를 얻는 데 있다고 제시합니다. 당신은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장(field) 속에 있을 때만 진정으로 존재합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속한 현실을 창조합니다.” ― 티모시 리어리 (Timothy Leary)   티모시 리어리 (Timothy Leary) 이 문장은 1960년대의 싸이키델릭(psychedelic) 문화와 의식 확장의 시대를 상징하는 강렬한 선언이었다. 당시 사회는 베트남 전쟁, 흑인 인권 운동, 여성 해방 운동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고, 젊은 세대는 기존의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티모시 리어리는 단순한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 내면의 탐구와 의식의 확장을 통해 더 깊은 차원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은 인간이 정보와 교류 속에서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더 높은 차원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개념에 기반했다. 이 철학은 싸이키델릭 문화와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의 중심이 되었고, 1970년대 후반 실리콘 밸리에서 창의적 사고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티모시 리어리, 새로운 시각을 탐구하다 1920년 10월 22일,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티모시 리어리는 어린 시절부터 규칙과 권위에 저항하는 성향을 보였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엄격한 군사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교했다. 그 후 UC 버클리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리어리는 인간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연구하며 학계에서 주목받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기존 심리학의 경계를 넘어 내면의 깊은 의식을...
칼럼 네츄럴 레볼루션 2025.02.12 Votes 0 Views 1586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