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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 Revolution

대마초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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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프로이트로부터 발명된 무의식은 인간 정신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그로인해 무의식처럼 덮혀있던 개인의 사고와 인식을 비롯, 사회와 문화에 관한 이해 또한 폭넓어졌다.
프로이트가 해낸 무의식의 발명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무의식이라는 말처럼 의식에서는 결코 잡히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발견이 아닌 발명이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주의 대부분이 미지의 암흑 물질인 것 처럼 인간 정신은 의식적인 것보다 무의식적인 것들이 훨씬 더 넓게 자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자아라는 개념 또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프로이트 이전에는 자아를 ‘의식하는 나’로 정의했다면 프로이트 이후의 자아는 ‘의식하지 못하는 나’로 완전히 정반대의 개념으로 자리 잡혔다.

이후 의식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와 인간정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겼고 많은 연구자들은 프로이트를 넘어서고자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거듭해 나온것이 바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이다.

DSM은 정신 질환을 먼저 각각의 카테고리별로 분류한다.

그 환자가 정신 이상인지, 감정 장애인지 또는 공황 장애인지 아니면 단순히 강박이나 불안인지 DSM에 나오는 22개 카테고리에 의해 진단 되고 처방 된다.

DSM이 아무리 정교하고 세밀하게 고안되었다 한들 인간 정신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굉장히 오만하고 방자한 태도다.

소위 ‘정상’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환자를 ‘비정상’ 취급한다.

물리적인 손상이나 다양한 요인으로 발병하는 신체적 질병들처럼 인간정신을 마치 의학이나 혹은 공학처럼 다루고
정신적 증상을 호르몬 문제라던지, 두뇌자체에 발생한 오류인듯 생물학적으로 접근한다.

처방이랄 것도 약 몇 봉다리 던져 주는 것 뿐.

왜냐하면 사실은 정신과 의사들도 잘 모른다.

한낱 풀떼기인 대마초도 모르는 정신과 의사들이 인간의 그 깊고 심오한 정신 세계를 어떻게 알겠나?

많은 것들이 신자유주의의 자본 앞에 무릎 꿇었듯 현대 정신 의학 또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의학에서가 아닌 철학의 사유에서 다시금 재조명 시킨 인물이 있었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선언한 자크 라캉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정신 분석 학회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다른 정신분석학자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자신이 만든 학회에서 축출당하기도 하며 비록 현대정신의학에 이바지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론은 철학, 종교, 정치, 예술 또는 인류학과 사회학 같은 인문학의 위상에서 더욱 주요한 가르침으로 자리매김 하게된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DSM이 그러하듯 인간을 결코 단순하게 재단하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 않고 인과관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을 찾게되는 정신병적 ‘증상’을 삶에 필요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4080849#home

이처럼 다른 학자들과 달리 프로이트가 제시한 길을 그대로 따라 걸어간 라캉은 결국 무의식의 실체를 밝혀내게된다.

라캉이 말하길 무의식이란 우리가 사용하는’언어’다.

인간은 언어로 배우고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로 소통하고 언어로 이해하고 언어로 욕망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모두에게 공유되어있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있으니, 바로 대타자라는 녀석이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라캉의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을 꼽자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일진데, 여기서의 타자는 바로 대타자를 뜻한다.

대타자는 비록 실재하지는 않는 라캉이 고안해낸 개념일 뿐이지만 그 힘은 막강하다.

색 안경을 쓴다 할 때 색 안경 그 자체다.

대타자는 집단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자, 집단이 옳다고 하는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모든 권력은 대타자가 되려하고, 대타자는 세상 그 자체가 되려한다.

가스라이팅의 상위호환 버전

그래서 대타자의 횡포에 득이 되는 집단이 있는 반면 반드시 실이 되는 집단이 있다.

당연하게도 다양성을 배척하게 되고, 대타자담론을 거부하는 소수의 삶은 힘들어지게 된다.

대타자는 개인의 자아를 형성하고 자존감을 관장하지만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 결코 모두를 만족시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대타자는 끊임없이 개인을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고, 소비를 부추기고, 욕망을 갖게하고, 우월함이라는 기준을 강요한다.

행복을 정의하고 그 정의를 강요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옳음을 정의하고 그 옳음을 강요하고 따라오지 않으면 사람을 하찮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다음의 그림 한장으로 잘 요약되는 남성 가부장적 대타자담론이 있다.

대타자는 거울속에 비친 모습까지 왜곡시킨다.

소설 1984에서 하나의 큰 권력인 빅브라더라는 은유로 대타자를 보여주었지만
지금 우리 세대는 대타자의 명령을 신의 목소리로 받들어 마지않는 다수의 작은 감시자들, 스몰브라더들 사이에서 살고있다.

(대마초를 잘 모르면서 자동 반사적으로 배척 하고 보는 이들처럼) 각자가 각자를 감시하고, 각자가 각자를 검열한다.

우리주변엔 모두 대타자들 뿐이다.

정신적 ‘증상’은 옳고 그름을 정의하는 대타자와 그 정의에서 벗어나고픈 개인 사이 이질감의 표현이자 당위성을 강요하는
대타자의 농간에 힘없는 개인이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정신 분석에서는 정신 의학처럼 진단 또는 투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대마초는 개인의 정신적 증상을 완화하고 대타자의 판단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대마초는 권력이나 이익에서 멀어지게하고 세상을 평온하고 안정되게 할 수 있다.

다른 불법화된 마약류들도 많은데 왜 굳이굳이 대마초만 합법화하려고 할까?

세계적으로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목소리만 이렇게 큰 것일까?

대마초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대마초는 거짓으로 가득찬 기존 대타자담론을 박살낼 수 있다.

대마초 합법화는 단순히 대마초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마초 합법화는 사회 운동이자 혁명적 발걸음의 시작이다.

대마초는 멋진 신세계의 소마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마초는 파이트클럽의 싸움같은것이다.

대마초는 어떤 것에도 지배받지 않을 수 있다.

나약하기만 했던 개인에게 대마초는 거대 권력에 대항할 힘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