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료용 대마초 등록부 18개월 추적 분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들에게 의료용 대마초가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5년 4월,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PTSD 환자 269명을 18개월간 추적 관찰한 끝에, 의료용 대마초 치료가 PTSD 증상, 불안, 수면 문제, 그리고 전반적 삶의 질을 모두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영국 의료용 대마초 등록부(UK Medical Cannabis Registry, UKMCR)를 기반으로 진행되었으며, 현재까지 의료용 대마초의 장기 효과를 다룬 가장 방대한 분석 중 하나로 평가된다.
PTSD,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PTSD는 단순히 ‘힘든 기억’을 떠올리는 질환이 아니다. 외상 후 지속되는 플래시백, 악몽, 무기력, 극도의 경계심은 일상생활 자체를 무너뜨린다.
영국에서는 인구의 약 5~10%가 PTSD를 겪고 있으며,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공식적으로 PTSD의 평생 유병률이 약 1.5%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청장년층(20~50대) 중 89.9%가 일생 동안 적어도 하나 이상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 PTSD 진단을 받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는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 사회적 낙인 등 복합적 요인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PTSD에는 기존 치료법인 심리치료(예: 인지행동치료, EMDR)나 항우울제(SSRI)도 효과는 있지만, 30~50%의 환자들이 치료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체 치료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연구자들은 의료용 대마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마초가 PTSD에 미치는 작용 메커니즘
대마초에는 수백 가지 활성 성분이 존재하지만, 특히 치료적 가능성이 주목받는 성분은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와 CBD(칸나비디올)다.
THC는 뇌의 공포 반응과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편도체, 해마, 전전두엽 부위에 작용해, 공포 기억의 강도를 낮추고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CBD는 세로토닌 시스템(5-HT1A 수용체)에 영향을 미쳐,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고 공포 소멸(fear extinction)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작용 메커니즘은 동물 실험과 초기 임상 연구에서 긍정적 신호를 보여주었지만, 장기적이고 대규모 임상 데이터는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연구 결과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18개월간의 추적: 꾸준히 이어진 개선
연구진은 의료용 대마초를 처방받은 PTSD 환자들의 상태를 1, 3, 6, 12, 18개월에 걸쳐 다음 지표로 추적했다.
- PTSD 증상(IES-R 점수)
- 불안(GAD-7 점수)
- 수면 질(SQS 점수)
- 삶의 질(EQ-5D-5L)
주요 결과
- PTSD 증상 감소: 초기 평균 58.4점 → 1개월 후 44.5점으로 급감, 이후 18개월까지 안정적 유지.
- 불안 완화: 평균 GAD-7 점수 14.6점 → 9.8점으로 감소.
- 수면 질 향상: 수면 점수(SQS)가 평균 3.2점(매우 나쁨) → 5.0점(개선된 수준)으로 상승.
- 삶의 질 전반 개선: EQ-5D-5L 평가에서 ‘일상 활동’, ‘통증/불편감’, ‘불안/우울’ 등 핵심 영역에서 뚜렷한 개선.
특히, 단기 개선(1~6개월) 에 그치지 않고, 18개월 동안 긍정적 효과가 지속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의료용 대마초가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 이상의 실제 치료적 잠재력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환자에게 더 효과적이었을까?
세부 분석 결과,
-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PTSD 증상 개선을 보고할 가능성이 높았다.
- 대마초 사용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초기 반응이 더 좋았으나, 장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 THC 고용량 투여군은 수면 개선과 불안 완화에서 뚜렷한 혜택을 보였다.
다만 18개월 시점에서는 일부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다소 둔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약물 내성(tolerance) 또는 효과의 상한선(ceiling effect) 현상 때문일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부작용은 어땠을까?
환자 4명 중 1명(26%)이 부작용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은 경미하거나 중등도 수준에 머물렀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다음과 같았다.
- 불면증 (15.61%)
- 피로 (14.87%)
- 두통 (12.64%)
- 구강 건조 (13.38%)
심각한 수준의 부작용은 0.5% 미만으로 드물었다. 특히 PTSD 환자군 자체가 원래 수면 문제를 자주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면” 부작용 보고율은 과대평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구진은 “대마초 기반 치료는 대체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장기 복용에도 심각한 부작용은 드물었다”고 평가했다.
나아갈 연구의 방향
이번 연구는 의료용 대마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데이터다. 그러나 관찰 연구라는 특성상 한계도 존재한다.
플라시보 효과, 환자의 주관적 기대 효과, 그리고 스스로 보고하는 방식(PROMs)에서 오는 편향, 이 세 가지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진은 “향후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RCT)을 통해, 대마초 기반 PTSD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마초, 낙인을 넘어 가능성으로
그동안 우리는 대마초 사용을 단순히 ‘나쁜 사람’, ‘범죄자’라는 틀에 가둬 바라보았지만, 정작 그들이 왜 대마초를 사용했는지, 그것이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제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넘어, 대마초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수단이 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때다.
의료용 대마초는 PTSD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부작용을 견디기 힘든 환자들에게, 대마초 기반 치료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이제, 대마초를 단순한 낙인 대신 ‘진지한 치료 옵션’으로 바라볼 시점에 서 있다.


